[사설] 여야의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된 선거법 협상

입력 2019-12-16 04:01
선거 기본원칙에 충실하고 정치 발전 내다보는 긴 안목으로 법 개정해야…
제1야당도 비의회적 방식 탈피해야


선거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임박한 상황에서 불거진 여당과 야 4당 사이 갈등이 낯 뜨겁다. 소선거구제와 지역주의 등으로 국민의 정당 지지도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사표가 양산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법 개정의 취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의원 1명이라도 더 챙기려는 ‘밥그릇 싸움’ 양상으로 협상이 전개되고 있다.

발단은 여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상한선을 설정하자는 안을 들고나온 때문이었다. 지역구 250석과 비례대표 50석의 틀 안에서 정당득표율을 의석수와 연동시키되, 비례대표 의석의 배분 대상에 30석의 상한(연동형 캡)을 두자고 제안했다. 나머지 20석은 현행 방식에 따르자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예산안 처리까지 순항하는 듯하던 자유한국당 외 정당들의 공조가 급격히 흔들렸다. 연동형 캡이 없을수록 소수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기 쉬워지기 때문에 여당의 제안은 의석수 손실을 줄여보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정의당은 이에 잠정합의안 발표에 불참했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도 결국 합의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협상 상대였던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한 독설도 쏟아졌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단가를 후려치듯 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거대 양당 체제를 넘어서자는 선거제 개혁 핵심 취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막판에 후려치기를 하는 것은 문제”라고 날을 세웠다. 평화당 정동영 대표도 합의안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질을 버린 ‘누더기’식이라고 비판했다.

선거법 개정은 국민의 대표를 뽑는 민주 선거제도의 기본 원칙에 입각하고 정치 발전을 내다보는 긴 안목에서 이뤄져야 한다. 일회성이거나 단기적인 셈법에 매몰돼 금방 사라지거나 곧 뜯어고쳐야 할 법을 만들어서 안 된다. 각 당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느라 누더기 법을 만드는 것도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다. 여당은 작은 이익에 연연하기보다 다수당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해 협상에 임해야 한다. 다른 정당들도 선거법에 이어 사법 개혁 법안과 예산 부수 법안 등을 처리해야 할 여당의 숨 가쁜 상황을 약점으로 물고 늘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제1야당도 마찬가지다. 총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는데 ‘나 홀로’ 반대에만 열을 올려서는 책임 있는 정당으로 지지를 받기 어렵다. 패스트트랙이란 제도가 여야 합의가 안 되는 의안을 물리적 충돌 없이 신사적으로 처리하자는 취지다. 그런데도 장외집회나 국회 농성 같은 비의회적 방식에만 기댄다면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