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평소 잘 아는 지인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오래간만에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가정사 등 많은 말들이 오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국회 패스트트랙, 북한 이야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유독 부동산으로 화제를 옮기니 모두 흥분하기 시작했다.
한 지인은 5월에 6억원 하던 서울 강동구 변두리 아파트로 이사하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했다. 그 지인 왈 당시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정책을 편다고 해서 조금 기다렸다. 그런데 집값이 심상치 않다고 해 어제 다시 그 아파트 가격을 알아봤더니 글쎄 9억원이 됐더란다. 7개월 만에 무려 3억원이 뛰었다는 것이다. 그 지인은 “처음에 그냥 눈 딱 감고 살 걸 괜히 정부 말 믿었다가 바보가 됐다”고 혀를 끌끌 찼다.
또 다른 지인은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그 친구는 정확히 10년 전 서울을 떠나 경기도 동부 외곽지역으로 집을 사서 이사를 갔다. 이제 애도 컸고, 교육 문제도 있고 해서 집을 팔고 다시 ‘인서울’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집값이 10년이 지났는데 오히려 1000만원이 떨어졌단다. 서울 아파트값은 하루가 멀다하고 억대로 뛰는데 본인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 게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남들은 집 사서 그렇게 돈을 벌었는데 나는 한 번 이사를 잘못해서 망했다. 이제 내 생에서 다시 ‘인서울’은 힘들 것 같다”고 푸념했다.
지난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를 하나 했다. 대통령비서실 전·현직 공직자 65명이 보유한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시세 변화를 분석해보니 이들이 보유한 집값이 3년 새 1인당 평균 3억2000만원이 올랐다는 것이다. 재임 당시 부동산정책을 주도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기도 과천 별양동 소재 주공아파트는 재건축 사업으로 3년 만에 10억4000만원이 뛰었다. “내가 강남 살아보니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이유가 없다”는 발언으로 유명한 장하성 전 정책실장의 서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한 채 값은 10억7000만원 올랐다. 시민들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식이다. 물론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소수의 사례를 일반화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주요 공직자들이 이런 막대한 부를 쌓았다는 사실은 일반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 충분하다.
최근 미디어에선 패스트트랙 충돌,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비리 감찰 무마 의혹,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이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 청와대와 정치권도 이런 이슈에만 온 힘을 쏟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작 일반 시민들은 이런 이슈에 별 감흥이 없다.
문재인정부는 참여정부를 반면교사 삼았으면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깎아 먹은 것은 거창한 주요 정치적 이슈가 아닌 ‘부동산’이었다. 실제 2006년 5월 47%였던 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부동산 값이 폭등했던 11월 말 17%까지 떨어졌다.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지금 집 사면 패가망신할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로 막아봤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국민들이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진정성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해 기준으로 정부 고위 공직자의 50.9%가 강남권에 부동산을 보유했다는 사실은 서민들의 불난 가슴에 기름을 끼얹었다. 결국 집값은 계속 폭등했고,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 5%대 지지율을 기록하며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따라서 문 대통령께 고언을 하나 드린다. 강남에 집을 가지고 있는 청와대 전·현직 비서관들에게 집을 팔도록 권유 좀 해주십사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일반 국민들이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장 전 실장에게 집을 처분하도록 설득해 주셨으면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상당한 재력가인 그는 주중대사로 부임한 뒤 살던 아파트를 전세 주지 않고 그냥 놀린다고 한다. 정작 장 전 실장이야말로 지금은 ‘강남에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모규엽 사회부 차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