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키코 피해 최대 41% 배상하라”… 은행들 수용 가능성 낮아

입력 2019-12-14 04:02

금융감독원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업들에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를 판매한 은행들에 대해 기업 손실의 최대 41%까지 배상하라는 조정 결정을 내렸다. 은행이 기업에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등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감원 조정 결정은 강제성이 없어 은행들이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금감원은 13일 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 등 4개 기업이 신한은행 등 6개 기업에 대해 신청한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은행이 기업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금감원 조정에 따르면 신한은행이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KEB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을 각각 배상해야 한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기업은 시장가격보다 높은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지만, 환율 등락 폭이 일정 선을 넘으면 미리 정한 환율과 실제 환율 간 차액의 2배를 은행에 물어줘야 하는 구조다. 금융위기 당시 많은 중소기업이 환율 급등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 일부 피해기업들은 은행에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벌여 배상을 받았지만, 당시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은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했다.

금감원은 키코를 판매한 은행들이 계약 체결 시 예상 외화유입액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다른 은행의 환 헤지 계약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규모의 환 헤지를 권유해 적합성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 환율 상승 시 무제한 손실 가능성 등 예상되는 위험성을 기업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 등 은행들이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정 결정은 지난해 7월 금감원이 키코 사건 재조사에 착수한 지 1년 5개월 만에 나왔다.

다만 은행들이 금감원 조정 결정을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금감원 조정은 양측이 조정안에 대해 20일 이내에 수용 의사를 표명해야만 조정이 성립돼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생긴다. 그동안 은행들은 해당 기업들이 키코 계약을 맺은 시기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에야 분쟁조정을 신청했다는 점을 근거로 배상에 난색을 표했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가 손해 발생 10년이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소멸시효가 지난 상황에서 배상하면 주주 이익을 해치는 배임에 해당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