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박정민x정해인 “방황하는 10대, 나와 닮은 면 있죠” [인터뷰]

입력 2019-12-15 21:33

예고편만 보면 좌충우돌 10대들의 유쾌한 코미디를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영화 ‘시동’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감당하기 버거운 세상의 어두운 이면들을 하나둘 들춰낸다. 사채나 강제철거, 성매매에 이르기까지.

그럼에도 영화는 시종 따뜻한 공기로 채워진다. 인생의 시동이 걸리지 않아 낙담하는 이들에게 ‘그래도 괜찮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극의 두 축 택일과 상필을 연기한 배우 박정민(32·왼쪽 사진)과 정해인(31·오른쪽)의 후일담을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각각 만나 들어봤다.

‘사바하’와 ‘타짜: 원 아이드 잭’에 이어 올해 세 번째 작품을 내놓은 박정민은 “사실 원작이 있는 작품은 원작의 팬들이 어떻게 보실까에 대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는데, 우리 영화는 원작을 많이 훼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동명 인기 웹툰을 영화화한 ‘시동’은 집을 나와 취직한 중국집에서 주방장 거석이 형(마동석)을 만나게 된 가출 청소년 택일(박정민)과 치매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의욕만 앞서 사채업에 뛰어든 반항아 상필(정해인)이 각자 세상의 쓴맛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박정민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간 건 택일과 엄마(염정아)의 관계였다.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지만 서로 표현하지 못해 계속 어긋나고 마는. “다들 겪어보는 감정일 거예요. 저 역시 무뚝뚝한 편이라 어머니에게 살갑지 못한 택일의 모습에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박정민은 모범생 이미지가 강하다. 학창시절 줄곧 전교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며 고려대 인문학부에 입학했다가, 영화의 꿈을 이루고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시 들어갔다. “사춘기가 늦게 온 편이었어요. 고교시절 영화감독을 하겠다고 했다가 부모님과 갈등이 시작됐죠.”

이제는 충무로를 이끌어갈 차세대 배우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박정민은 “신인시절에는 무작정 열심히만 했는데 차츰 ‘내 몸을 혹사시킨다고 무조건 좋은 그림이 나오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면서 “자칫 잘못하면 나태해질 수 있지만 그것만은 철저히 경계하고 있다”고 했다.


정해인은 ‘시동’을 통해 낯선 얼굴을 보여줬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JTBC)에서 손예진과, ‘봄밤’(MBC)에서 한지민과 로맨스 호흡을 맞추며 ‘국민 연하남’으로 떠오른 그가 거친 반항아로 변신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을 늘 갖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표현 수위가 꽤 높다. 채무자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욕설까지 내뱉는다. 다만 정해인은 “멜로 작품에서 보여드린 모습들도 소중하기 때문에 구태여 벗어나려 노력하진 않았다”면서 “차근차근 나아가려 한다. 서두르면 저 자신에게 덫으로 작용할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는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정해인은 “친구에게 의존하는 면은 상필과 닮았다”고 얘기했다. “저도 학창시절에 친구를 많이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친구들과 놀기 바빴죠. 그렇다고 맘껏 논 것도 아니고, 다 어중간했어요(웃음).”

배우가 되자, 결심한 건 제대 즈음 군대에서였다. 그땐 막연하기만 했던 ‘연기’가 지금은 인생 전부가 되어버렸다. “연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워요.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더 잘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기죠. 아저씨가 되어서도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며 오래오래 연기하고 싶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