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육성 VR·AR 산업 ‘돈 먹는 하마’ 전락 우려

입력 2019-12-12 18:28

정부가 내년에 예산 400억원을 들여 서울 광화문에 경복궁 등 대표적 문화유산을 실감 나는 가상현실(VR) 콘텐츠로 재현하는 공간을 만드는 ‘광화문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한다. 5세대 이동통신(5G) 등 한국의 우수한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활용해 VR·증강현실(AR) 콘텐츠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추진하는 VR·AR 산업 육성이 자칫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2일 한국VRAR콘텐츠진흥협회에 따르면 최근 국회를 통과한 2020년 예산안에 담긴 VR·AR 등 실감 콘텐츠 산업 육성 관련 예산은 총 1500억원에 이른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예산은 870억원으로 올해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400억원을 배정한 ‘5G 실감형 광화문 프로젝트’를 비롯해 국립 문화시설에 실감 콘텐츠 체험관을 확대하는 사업(100억원), 장애인 대상 VR 드림존 구축(20억원) 등이다. 5G를 기반으로 가상체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보급하는 데 101억원도 책정됐다. 실감형 콘텐츠 산업 체험인프라는 서울 중심부와 공공기관, 일선 학교까지 전방위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VR과 같은 실감 콘텐츠는 도입 초기에 많은 관심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용객들이 식상해하기 때문에 계속 소프트웨어(SW) 등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면서 “운영기관이 비용 문제 등으로 이를 소홀히 하면 금세 애물단지가 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애물단지로 전락한 사례도 있다. 최근 한국마사회는 서울 강남지사에 있는 VR 시뮬레이터 등 VR 장비 1억원 상당을 매각하기로 하고,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불용자산 매각 공고’를 올렸다. 매각 대상인 VR 시뮬레이터와 VR 콘텐츠 영상 등은 2016년 말 설치됐다. 마사회는 2017년에 자체 운영 레저시설에 가상승마 VR 시뮬레이터를 도입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었다. 마사회 관계자는 “관련 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고 새로운 콘텐츠 제작이나 SW 업그레이드에 돈 1000만원은 예사로 들기 때문에 감당이 안 된다. 그냥 불용처분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마사회는 지난달 말부터 입찰공고를 4차례 하고 경매 최저가를 1935만원(부가세 포함)까지 낮췄다. 하지만 아직 입찰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세종=이종선 전성필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