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 특별전 ‘가야본성-칼과 현’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영호남 화합 차원에서 가야사를 부각하고자 하는 정부 정책에 따라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발굴이 이뤄졌고, 이번 전시에도 함안 말이산 고분군과 마산 현동 고분에서 출토된 사슴뿔잔과 배모양 토기 등 현 정부 들어서의 발굴 성과물이 나왔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 총 31개 기관에서 빌려온 2600여점이 총출동했다.
정부의 정책에 코드를 맞추다 보니 전시도 시종 가야의 국가적 성격으로 화합과 공존을 강조한다. 그래서 전시 들머리도 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으로부터 가져왔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김해 구산동의 ‘파사석탑’이 장식한다. ‘신화에서 역사로’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최초의 국제결혼이자 다문화 가족의 시작이라는 설명도 곁들인 데서 보듯 다문화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A교수는 12일 “김해의 고분군에서 인도 유적이 출토된 적이 없어 ‘인도 공주론’은 위험하다. 자칫 국가기관이 공증한 것이라는 인상을 줘 역사교육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라, 백제, 고구려, 왜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화합과 공존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예컨대 고령 지산동 73호 무덤에서 나온 백제산 봉황무늬큰칼, 합천 옥천 M1호 다락국 지배자의 무덤에서 나온 신라에서 온 유리잔 등을 그런 사례로 제시했다. 유물의 주종을 이루는 토기도 화합을 강조해 유리탑 같은 거대한 진열장에서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사슴뿔잔과 배모양 토기 등 가야의 탁월한 미감을 보여주는 상형 토기들이 부각되지 못했고, 가야 토기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취지도 살리지 못한 느낌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때 강성했던 가야의 모습을 다양한 철제 갑옷과 중장기, 덩이쇠 등을 통해 보여준다. 가야 지배자의 무덤 구조를 실제 크기로 느낄 수 있도록 출토 유물과 함께 재현한 전시장은 스펙터클하다.
그런 가야가 왜 망했을까. 전시 기획자는 “가야는 4세기 전반까지는 번성했다. 결국 통합에 실패하면서 4세기 후반부터 쇠약해졌다. 신라와 백제는 각각 진한, 마한의 소국들을 통합시켜 고대국가로 성장했는데, 통합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가야의 국가 성격으로 ‘칼과 현’을 제시했다. 철의 나라 가야의 산물인 칼과 가야금 예인 우륵의 생애를 그린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에서 각각 제목을 땄다. 결국 가야가 내건 가치인 현으로서의 화합과 공존이 공허하게 들리는 스토리 구조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새로운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가야 여러 나라의 명칭으로 통일신라시대 이후 사용해온 6가야 대신에 당시에 가야인들이 사용했던 가락국(금관가야), 아라국(아라가야), 가라국(대가야), 고자국(소가야), 비사벌국(비화가야), 다라국 등을 쓴 것이다.
인제대 이영식 교수는 “가야시대 사람들은 가야라는 말 자체를 몰랐다. 수로왕이 금관가야라고 하면 못 알아듣고 지나칠 것이다. 금관은 532년 신라가 김해를 통합하고 군으로 강등하면서 금을 관리한다는 뜻으로 금관이라고 붙인 데서 연유한다”면서 “제대로 한 시도”라고 반겼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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