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사모선교회(대표 이에스더 목사)는 매년 이맘때 우편 발송 작업으로 분주하다. “홀사모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 정기 후원을 약정해 달라, 성탄절 구제나 각 선교회의 연간사업에 홀사모 선교회를 포함해 달라”는 우편물이다. 선교회가 이처럼 홀사모를 돕기 위해 헌신하는 것은 선교회 대표인 이에스더 목사가 40여년 전 홀사모의 애환을 고스란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36년 전 부군과 사별하고 홀사모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뼈저리게 느끼고 홀사모선교회를 만들었다. 이후 홀사모들의 오랜 친구로 25년째 이들을 돕고 있다.
이 목사는 요나3일영성원의 원장으로 홀사모 선교사역 외에도 “신앙은 기도하는 만큼 자라고 신앙인의 인격도 기도하는 만큼 변한다”는 필립 얀시의 말을 실천에 옮겨 기도사역을 하고 있다. 도심 속에 ‘기도 요새’를 만들었으며 방송 설교, 집필활동 등을 계속하고 있다.
홀사모란 이름도 이 목사가 만들었다. “1994년 6월에 홀사모 수양관을 개관하면서 ‘홀사모’라는 이름을 교계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홀아비, 홀어미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홀사모’란 표현이 지금은 보편화된 이름 같지만 8년간 선교목사로 시무할 당시 일본 후쿠오카한인교회 이성주 목사님과 함께 지은 것입니다. 특허까지 받았습니다.”
1998년 이 목사의 사연이 국민일보와 책을 통해 알려지면서 홀사모 사역도 탄력을 받았다.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이에스더 목사편’은 같은 해 2월 연재됐고 6월엔 홀사모 수기인 ‘주님, 한 손만 잡아주소서’가 국민일보 출판사를 통해 출간됐다. 이 원장은 자신의 처녀작에 조용기 김장환 목사, 고 신현균 이중표 목사 등 한국 교계의 내로라 하는 목회자들이 추천의 글을 써줘서 많이 팔렸고 이를 통해 후원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홀사모 가정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남편 목회자가 있어도 작은 교회 사모는 삶이 어려운데 남편이 소천하면 더 어려워지고 고통받는 것이 현실이다. 부군의 목회를 이어서 하고 있거나 신학교에 입학, 여 교역자로 사역하는 경우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또 자녀들이 장성해 목회자가 되거나 어머니를 도울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막상 홀사모가 되면 목회의 뒤를 잇고 싶어도 쉽지 않다.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또 교회가 여건을 만들어 준다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대개 식당 허드렛일, 파출부, 공공근로자 등으로 나서고 있다. 교회 청소를 담당하거나 간병인, 요양 보호사로 일하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홀사모선교회는 우선 자녀 장학비 및 생활 보조비를 후원하고 있으며 홀사모 가정의 경조사 등에 참석해 위로 및 격려금을 지원하고 있다. “완벽한 자립 방안을 제시하거나 홀사모 모두를 책임질 수 있는 기관이나 개인은 없습니다. 다만 동병상련의 홀사모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만 해도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회원 중 일부에 불과하지만 매년 30명을 우선 지원대상자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앞으로 사글세로 전전긍긍하며 불안정한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가는 홀사모에게 작은 쪽방의 월세 보증금이라도 지원해 자녀들과 함께 삶의 안정을 찾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소천한 부군의 남은 사명을 감당하고자 목회 개척에 나서면 건물 임대 보증금의 일부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우편 발송 작업에 박차를 가하던 이 원장은 “이제까지 따뜻한 사랑으로 후원해 준 많은 교회에 감사드린다”며 “그 교회들이 선교회의 진정한 버팀목이 돼 왔다. 올해도 십시일반 높은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글·사진=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