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설치미술가 홍순철(64)씨는 4년 전 전남 나주 금천면에 들렀다가 그곳 숲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푹 빠졌다. 외부 소리가 차단된 채 풀벌레 소리가 가득한 그 숲에서 문득 자신이 현실에 매몰돼 감각을 잃고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때마침 후드둑 빗방울이 떨어져 촉각적 감동까지 더해졌던 순간이었다.
그가 그 숲에서 받은 감동을 전시장에 재현했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하고 있는 ‘검은 강, 숨은 숲-6 Senses’(사진 )전에서다. 자신이 감각했던 숲의 시공간을 관람객들이 가급적 그대로 느낄 수 있게 영상, 설치, 사운드 등 온갖 요소를 버무렸다. 작가에게 시공간을 옮긴다는 것은 자신의 여섯 가지 감각이 아연 살아나며 느꼈던 그 순간적 감동을 모두 가져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대형 전시장에 들어서면 천장에 푸른 숲의 영상을 담은 스크린이 여러 개 매달려 마치 숲 안으로 들어선 기분이 든다. 바닥에는 검은 늪을 만들었고, 하늘에선 간헐적으로 물이 떨어진다. 마이크를 통해 증폭시킨 빗소리 덕분에 실제 비를 맞는 느낌에 젖게 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관람객이 전시장에 있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금천면의 숲으로 송출되고, 현장의 숲 분위기가 덧입혀져 전시장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다. 그야말로 가상과 실재가 뒤범벅된 ‘텔레프레젠스(원격 실재)’ 체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1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현실과 가상, 현실과 복제, 실재와 가상, 현실과 정보 등 초연결 정보 사회를 살아가는 관람객들이 자연과 생명, 공간과 시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예술적으로 체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방송사에서 20여년 간 PD로 일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도 재직했다. 1980년대부터 작가로 활동하며 영상과 미디어아트를 접목한 작품을 주로 한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