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사람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

입력 2019-12-13 04:04

2019년 11월 2일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월경한 북한 어민 2명이 군에 나포됐다. 그들은 3일간 정부 조사를 받은 다음 7일 판문점을 통해 강제 추방됐다. 이런 사실은 국회에 출석한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으로부터 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돼 알려지게 됐다.

통일부는 “나포된 북한 어민 2명은 다른 1명과 함께 지난 10월 말 동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오징어잡이 배에서 선장의 가혹행위에 불만을 품고 그를 살해한 다음 동승했던 어민 15명을 차례로 살해했다”며 “살인한 사람은 북한이탈주민법상 보호 대상이 아니며, 북한 어민 2명은 흉악범죄자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도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해 북한으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원칙적으로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헌법 제3조).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에 입국 및 거주할 권리를 가지고(헌법 제14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27조). 북한 주민이 북한 지역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당연히 대한민국의 수사권과 사법권이 미친다. 북한 주민이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 있을 때에는 대한민국의 실효적 지배권이 현실적으로 미치지 못하지만 이남 지역에 있는 경우 정부는 마땅히 수사해 사법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사법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은 탈북민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제1조). 이 법률은 탈북민이 살인 등 범죄를 저지른 경우 정부가 보호 및 지원을 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는 하나(제9조 제1항 제1호, 제2호) 탈북민을 강제로 추방할 수 있다는 근거 규정이 아니다. 또 탈북민은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대한민국 국민이지 난민의 지위가 인정되는 외국인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 등의 경우 입국이 거부돼 공항에서 송환대기 중이라 해도 정부가 그의 변호인 접견을 불허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2014헌마346). 입국이 거부된 외국인이라 해도 난민 인정 등 자신의 권리 구제를 위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탈북민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추방하는 것은 이런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도 반한다.

또 탈북민이 범죄 혐의를 받는다고 북송된다면 북한은 이를 이용해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안착한 탈북민에 대해 거짓을 만들어 송환을 요구할 수 있다. 이는 탈북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는 무죄추정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헌법 제27조 제4항).

중범죄자인 북한 주민이 국내에 입국하는 경우 질서유지와 공공복리에 위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인권은 어떤 가치보다 우선한다. 법치주의 원칙은 중범죄자도 적법 절차에 따른 재판을 통해 처벌될 것을 요구한다. 북한은 적법 절차가 지켜지지 않는 공산국가의 사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탈북민은 북한을 이탈했다는 이유만으로 잔혹한 고문과 공개 처형을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가입해 1995년 발효된 유엔고문방지협약은 대규모 인권침해 사례가 존재해 고문을 받을 위험이 있는 나라로의 추방·송환 또는 인도를 금지하고 있다(제3조). 정부가 탈북민을 북한으로 강제 추방하는 것은 헌법상 국민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고(헌법 제10조), 우리나라가 체결·공포한 국제 규범에도 위반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마태 16장 26절). 표류한 선박의 북한 주민이 원하는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으로 송환될 수 있다 해도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려는 탈북민은 강제로 추방되어서는 안 된다. 또 자유를 찾고자 탈북하려는 북한 주민의 입경(入境)을 방해하거나 외국에서 방황하는 탈북민의 국내 송환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