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나란히 ‘인적 쇄신’ 경쟁에 들어갔다. 11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5선 원혜영 의원(경기 부천 오정)과 3선 백재현 의원(경기 광명갑)이 내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중진 용퇴론’에 불을 댕겼다. 자유한국당은 자녀나 친인척이 연루된 입시·채용 비리 등을 ‘조국형 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해당될 경우 내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바꿔야 이긴다’는 선거에서의 불문율에 따라 정치권의 인적 쇄신, 물갈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원혜영, 백재현 의원은 국회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불출마 뜻을 밝혔다. 민주당에서 중진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 의원은 “20대 국회를 끝으로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고자 한다”며 “후배 세대 정치인들이 더 큰 책임감으로 정치를 바꾸고 새로운 세대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천시장 출신인 원 의원은 부천에서만 5선을 지냈다. 최근에는 차기 총리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백 의원도 “남아 있는 숙제는 이제 후배 정치인들에게 부탁드린다”고 했다. 세무사 출신인 백 의원은 광명에서만 내리 3선을 지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켜온 두 중진 의원이 후배들을 위해 명예로운 결단을 해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민주당에서는 하위 20%를 가려내는 현역 의원 평가가 마무리되면 중진 불출마 기류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당은 출마 희망자의 공천 부적격 판단 기준을 대폭 강화하며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예고했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은 4대 분야(입시·채용·병역·국적)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자녀와 친인척이 연루된 비리가 있다면 공천에서 부적격 처리키로 했다. 병역은 본인과 배우자, 자녀가 대상이다. 국적은 고의적인 원정출산 등이 해당된다.
총선기획단 발표에 따르면 도덕성과 청렴성도 공천의 중요 판단 기준이다. 불법 재산 증식이나 부정 청탁, 음주운전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거나 우월적 지위로 불합리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은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또 ‘국민정서 부적격자’ 기준을 통해 여성과 관련한 성범죄와 아동 학대를 한 사람도 부적격 처리할 방침이다.
총선기획단 총괄팀장인 이진복 의원은 발표 후 기자들과 만나 “이를 기준으로 현역 의원 중 교체 대상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여러분도 다 아실 것”이라며 이번 조치가 앞서 발표한 ‘현역 50% 이상 물갈이’ 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한국당은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논란이 된 박찬주 전 육군대장의 입당을 허용했다. 당 관계자는 “이번 입당 심사와 공천 심사는 완전히 별개의 절차”라고 말했다.
여야가 인적 쇄신 경쟁에 나서는 것은 물갈이가 선거 승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대 총선에서 제1당이 된 민주당의 현역 의원 교체율은 33.3%였다.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 간 갈등으로 잡음을 일으킨 새누리당(현 한국당)의 현역 의원 교체율은 23.8%에 그쳤고 결국 선거에서 민주당에 졌다. 19대 총선에선 현역 의원 교체율이 높았던 새누리당(47.1%)이 민주통합당(37.1%)에 승리했다.
박재현 김용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