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하다… 아차” 충격의 한국당… 원내지도부 협상력 도마에

입력 2019-12-12 04:04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원천 배제’된 자유한국당 원내지도부의 부실한 협상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당은 지난 10일 본회의 때 “설마 제1야당을 예산안 논의에서 배제하겠느냐”며 방심하는 사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했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원내지도부 선출 직후에 일격을 당해 바로 책임을 묻긴 어렵지만, 앞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태를 어떻게 풀어낼지를 지켜본 뒤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당은 예산안 강행 처리 이후 국회에서 밤샘 농성을 이어가며 정부·여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황교안 대표는 11일 “민주당이 주도한 예산안 통과는 폭거다. 국민의 뜻은 무시했고, 제1야당의 뜻은 짓밟혔다. 제멋대로 예산을 배분해서 쓰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모든 것을 막아내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심재철(사진) 원내대표도 “이것은 명백한 의회 쿠데타, 의회 독재다. 문재인 좌파 독재 정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조세 관련, 세입 관련 각종 법안, 비쟁점 법안, 그리고 또 처리될지도 모르는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 분명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한국당 소속의 이주영 국회부의장도 “헌정 사상 유례없는 의정 폭거가 일어났다. 국민의 혈세를 도둑질당했다”며 “이렇게 되면 국회는 문희상 (국회의장) 독재 국회가 되는 것”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예산안 안건이 본회의 첫 순서로 바뀐 것, 본회의 개의 시간을 사전에 논의하지 않은 점, 한국당 의원들이 낸 수정안에 대한 제안설명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은 것 등 절차적 문제점도 제기했다.

예산안 처리를 눈 뜨고 지켜보기만 했던 한국당은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은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허약한 원내지도부가 협상력을 금방 회복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당내에서도 원내지도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당 중진 의원은 “원내지도부가 시간을 좀 더 끌었어야 했는데 투쟁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며 “법안처리 순서라든지, 법안 내용이라든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연동률을 가지고 충분히 여권 동맹이 이완될 수 있는 구멍이 있었는데 활용을 못했다. 대비를 많이 했다고 원내지도부가 말했는데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원내지도부 선출 직후에 벌어진 일이라지만 데뷔전이 실망스러웠다”며 “명확한 대응 방안 없이 우왕좌왕하는 느낌이 있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심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투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의원총회에서 “무도한 폭거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점 죄송하단 말씀을 드린다. 앞으로 더욱 더 힘내서 좌파독재를 막기 위해 전진하겠다”며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이 전쟁을 처절하게 싸워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원내지도부의 마지막 임무가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인 만큼 심 원내대표와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신임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자칫 패스트트랙 법안마저 아무 소득 없이 여당 주도로 강행 처리된다면 한국당 원내지도부에 대한 원성이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희정 김용현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