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11일 서울 용산의 미군기지 반환 절차에 착수키로 합의했지만 용산기지 반환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기지 오염을 정화하는 문제다. 미국 측은 주둔기지를 반환할 때 원상 복구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정화 비용 분담에 응하지 않고 있다. 미군기지 정화 비용을 한국 정부가 모두 떠안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군기지 반환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데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데만 수년씩 걸리곤 했다. 이날 반환된 강원도 원주 캠프 롱과 이글, 인천 부평 캠프 마켓, 경기도 동두천 캠프 호비 쉐아사격장 4곳 역시 지지부진한 협의를 거쳐 왔다. SOFA 환경분과위 논의가 3~6년간 계속됐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었다. 기지 4곳이 2009~2011년에 이미 폐쇄된 상태였는데도 반환 논의는 공전하기 일쑤였다.
이날 반환된 4곳뿐 아니라 반환 협의에 착수키로 한 용산기지에 대해서도 오염 정화 문제는 뇌관으로 남아 있다. 미국 측은 미군이 기지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생활해 왔다는 이유를 들며 주한미군 기지 환경정화 기준(KISE)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미군의 정화 기준은 ‘인간 건강과 안전에 대한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정해지는데 이 위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미국 측 주장이다.
이전에 반환된 54개 미군기지 가운데 25곳에서 오염이 확인됐지만 미국은 정화 비용을 내지 않았다. 미군이 외국 주둔 기지에 대한 정화 비용을 분담한 사례도 없다. SOFA 문서에 오염 정화 책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한·미는 2001년 SOFA 합의의사록과 특별양해각서를 통해 환경 관련 규정을 강화했지만 오염 수치 기준을 명확하게 합의하지는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측이 정화 의무까지 면제받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헌재 결정이 있다”며 “하지만 오염 문제와 관련한 확실한 기준이 없어서 미국 측과 합의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SOFA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500%에 가까운 증액 요구를 하는 미국 측에 미군기지 정화 문제를 거론하며 협상력을 높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기지 정화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 총액에 포함시키는 쪽으로 협상을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이 정화 비용을 한국 정부에서 모두 부담하게 되는 데 대해 ‘빚을 졌다’고 여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적극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기 위해 주한미군 기지 반환 문제를 일단 털고 가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화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는 미국에 대한 반발 여론이 얼마나 커질지도 변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 민심을 겨냥해 기지 반환을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고 있다. 개발사업이 조속히 추진되지 못하는 데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을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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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를 규정한 한·미 양국 정부 간 협정으로, 1966년 7월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조인돼 67년 2월 발효됐다. 주한미군 기지 반환 관련 절차뿐 아니라 미군의 형사재판권에 대한 규정도 포함돼 있다. 두 차례 개정을 통해 미군의 한국 환경 법령 존중, 중요 범죄 미군 피의자 등에 관한 규정이 강화됐다.
김경택 이상헌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