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 뇌물죄 빠진 탄핵소추안 공개… 트럼프 “맹탕”

입력 2019-12-12 04:01

미국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권력남용과 의회방해 혐의를 적용한 탄핵소추안을 공개했다. 이로써 지난 8월 ‘우크라이나 스캔들’ 폭로 이후 4개월 만에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위한 법적 절차가 본격화됐다. 민주당은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업적으로 자평하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탄핵과 무관하게 행정부 정책을 발목 잡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도울 일 있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당 지도부는 10일(현지시간) 9쪽 분량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을 공개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하원 법사위원회가 작성한 탄핵안은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부당하게 얻으려 국가안보와 핵심 국익을 무시하고 훼손함으로써 대통령의 권력을 남용했다”며 “외국 세력이 민주적 선거절차에 개입하도록 부추기는 데 자신의 권한을 악용함으로써 국가를 배신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수사토록 압박하기 위해 4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금을 지렛대로 악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조사가 개시된 이후 행정부 관리들에게 청문회 출석 불응을 지시하는 등 의회방해 행위도 저질렀다고 탄핵안에 적시했다. 재럴드 내들러 법사위원장은 “개인적 이익을 목적으로 국익을 무시, 훼손하며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탄핵될 수 있는 범죄”라고 밝혔다.

다만 민주당은 최대 쟁점이었던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대가성 거래)’에 따른 뇌물죄는 적용하지 않았다. 미국 헌법은 ‘반역, 뇌물 및 여타 중대범죄와 비행’을 탄핵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탄핵 사유로 직접 언급한 뇌물 혐의가 들어갔다면 탄핵안이 훨씬 강력해졌겠지만 민주당은 고심 끝에 제외했다. 구체적인 범죄 혐의가 탄핵안에 들어갈 경우 법률 해석과 판례를 둘러싼 논쟁이 야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유세에서 탄핵안에 적시된 혐의가 “범죄조차 아니다”며 “모두 이걸 ‘맹탕 탄핵(impeachment-lite)’이라고 부르고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허약한 탄핵안”이라고 비난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헤수스 세아데 멕시코 외교차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부총리(앞줄 오른쪽부터)가 10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대통령궁에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수정안에 서명한 뒤 펼쳐 보이고 있다. USMCA는 1994년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할 새 무역협정이다. 수정안은 3국 의회의 비준을 모두 거치면 발효된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이날 멕시코에서 타결된 USMCA 수정안에 지지를 표명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USMCA 수정안은) 의심의 여지없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보다 훌륭하다. 처음 정부가 제안했던 안보다도 훨씬 좋다”며 다음 주 중 USMCA 수정안을 표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도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1년 넘게 지연돼온 USMCA 의회 비준은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펠로시 의장의 입장 표명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을 공개한 지 1시간여 만에 나왔다.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민주당이 지지하는 어색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의회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의 한 보좌관은 펠로시 의장의 행동을 두고 “심각한 조현병 증세 같다”며 “미국 대통령이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놓고는 어떻게 곧바로 ‘여러분, 무역협정이 타결돼 기쁘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