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자랑이냐”는 댓글… 아동주거권 보장은 헌법적 권리

입력 2019-12-12 04:01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아동주거빈곤가구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토론회에선 주거빈곤층에 대한 주거급여 지원 등 다양한 주문이 이어졌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경기도의 단칸방에서 자녀 2명과 함께 사는 A씨는 지난 4월 한 언론에서 주거빈곤가구로 소개된 후 아이와 함께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기사에 달린 “가난이 자랑이냐” “무책임하게 아이를 왜 낳았느냐” 등 무수한 악성 댓글은 그의 가슴을 후벼팠다. A씨 지원을 담당한 김동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 과장은 11일 “A씨가 ‘애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댓글들을 보니 처참하다’며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동 주거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동가구에 대한 정부의 정책 지원 외에 시민들의 인식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현 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 소장은 “집은 개인자산이라는 개념이 강해 기본권리라는 인식이 약하다”며 “하지만 주거권 보장은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헌법적 권리”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를 왜 낳았느냐’는 비난이 가장 많은데, 개인 교육수준에 따라 자녀계획 관련 인식이 낮을 수 있다”며 “이미 태어난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가정이 제 역할을 못 할 때 나라가 나서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동주거권 보장은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주거빈곤에 빠진 아이들은 이후 교육, 건강, 발달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김 소장은 “집에서 편히 못 쉬는 아이들은 밖으로 뛰쳐나와 방황하거나 무기력하게 생활하게 된다. 제대로 된 교육, 보살핌을 못 받아 가난이 악순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선 아동 주거복지를 ‘수급자 사전예방’ 차원으로 접근한다. 김 과장은 “주거빈곤 아동이 정상적으로 크지 못하면 향후 어차피 성인 수급자로서 정부 지원을 받게 된다는 통계, 분석에 주목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늦었지만 아동주거권 보장을 향한 첫발을 뗐다. 국토교통부 등은 지난 10월 발표한 ‘아동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 대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선정 시 우선순위에 ‘아동가구’ 항목 신설, 전세지원금 상향 조정 등의 내용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조금 더 세밀한 정책을 주문했다. 우선 정부가 지원하는 주택에서라도 최저주거기준이 지켜지도록 만드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일보가 찾은 공공임대주택 거주 아동가구들은 곰팡이, 쥐가 가득하거나 이성 남매가 좁은 방에서 함께 생활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양질의 전세임대 물량에 대한 요구도 있다. 공공임대주택의 한 유형인 전세임대는 개인이 전세금을 지원받아 민간주택을 임차하는 방식이다. 이때 LH공사가 집주인과 계약을 하는데 자신의 채무 상태 등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집주인들은 전세임대를 기피한다.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굉장히 열악한 주택만 전세임대 시장에 나온다”며 “전세임대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주택 물량으로 지원해주는 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평균 12만원에 그치는 주거급여를 현실화해서 열악한 주택 자체가 공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충분한 주거급여를 준 뒤 일정기간이 지나면 최저주거기준에 맞는 환경으로 이사를 가도록 강제한다”고 했다.

서울 사랑의교회(담임목사 오정현)는 ‘주거빈곤아동의 혹독한 겨울나기’ 연속보도와 관련해 주거빈곤아동의 자립을 위해 1000만원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탁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