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4일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 차이잉원(사진) 총통이 이끄는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참패했다. 민진당은 22개 현·시장 자리 중 6개를 얻는 데 그쳤고, 야당인 국민당이 15곳이나 차지했다. 독립 추구 성향이 강한 차이 총통이 2016년 집권한 이후 ‘탈중국화’ 정책으로 중국 본토와 자꾸 부딪치자 피로감이 커진 대만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고 ‘안정’ 쪽에 표를 던졌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선거에서 ‘낙제’ 점수를 받은 차이 총통은 당 주석직에서 사퇴했고 2020년 재선도 물 건너 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반면 국민당의 한궈위 후보는 직할시인 가오슝 시장에 당선되면서 일약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지방선거 후 1년이 지난 현재 차이 총통은 화려하게 재기했다. 한 달 뒤 대만 총통 선거에서도 재선이 유력시된다. 10일 대만 빈과일보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민진당 후보인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50.8%로, 국민당 후보인 한 시장의 15.2%보다 35% 포인트 이상 높았다.
차이 총통의 재기를 도와준 것은 역설적으로 앙숙인 중국이다. 대만 국민들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탈중국’을 외치는 차이 총통에게 사실상 정치적 사형선고를 내렸는데, 올 들어 중국이 대만을 자극하면서 새로운 판을 깔아줬다. 차이 총통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중국이 그를 밀어내기 위해 군사·경제·외교 등 전방위로 몰아붙이다 오히려 역풍을 맞은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월 “무력으로 통일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혀 대만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중국 전투기들은 대만 해협 상공의 중간선을 넘어 들어갔고, 지난달 17일에는 중국 제1호 자국 항공모함이 항모전단을 이끌고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무력시위를 했다.
중국의 군사적 압박에 맞서 차이 총통은 “국토와 주권은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굳건히 지키고 양보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권과 민주주의 수호자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이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외교적 고립 전략을 가속화한 것도 민심을 자극했다. 중국 정부는 자본을 앞세워 대만 수교국에 외교 관계를 끊으라고 회유하는 전략을 썼고 2016년 차이 총통 취임 후 7개국이 대만과 단교했다. 지난 8월부터는 본토 주민의 대만 자유여행을 금지하는 경제적 보복 조치까지 동원해 대만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
지난 6월부터 본격화한 홍콩 시위와 경찰의 강경진압 사태는 차이 총통의 지지율을 확고하게 굳혀주는 계기가 됐다. 중국 정부가 목소리를 높여 개입하면서 홍콩에서 혼란이 벌어지자 대만에서는 “우리도 홍콩처럼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확산됐다.
중국 본토에 뿌리를 둔 친중 성향의 국민당 후보인 한 시장은 이대로 가면 참패를 면하기 어렵게 됐다. 한 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떼돈을 벌게 해 주겠다’(大發財)는 경제 구호로 돌풍을 일으키며 가오슝 시장에 당선돼 단숨에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반중 정서가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친중’ 꼬리표를 단 그로서는 선거전략조차 세우기 힘든 상황이다. 중국이 반중 인사인 차이 총통을 떨어뜨리려고 대만에 총공세를 폈는데 오히려 중국과 친한 국민당의 후보를 벼랑 끝으로 모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