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는 국민이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할 수 있도록 주52시간 근무제를 전체 산업에 적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법정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를 최대 12시간만 할 수 있도록 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여가를 즐기는 삶을 만들겠다는 ‘선한 의도’다.
하지만 선의는 현장과 충돌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예상치 못한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 근무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 생산활동을 한다는 특성을 감안하면 획일적 근무시간은 기업의 혁신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정부도 뒤늦게 스타트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에 주52시간제를 적용하는 게 무리라는 판단을 내리고 1년이라는 계도기간을 설정했다. 다만 정책의 철회는 아니다. 내년 1월 1일부터 50~299인 사업장도 주52시간제를 하되, 1년간 단속이나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숨 돌릴 틈을 얻었을 뿐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숙제는 여전하다. 이에 ‘일할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정밀한 보완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1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가 지난 10월 발간한 ‘2019년도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주52시간제 관련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대답한 스타트업 창업자는 57.1%나 됐다. 창업자 149명에게 설문한 결과다. 주52시간제에 맞춰 근태 관리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답한 스타트업은 20.4%에 불과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업계 환경’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양한 근무형태와 업태를 가진 스타트업에 일률적익 근무시간을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스타트업의 경우 자유로운 근무시간을 ‘사내 복지’로 내세우기도 한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주52시간제는 나를 위해 더 많이 일하겠다는 개인의 일할 권리를 막는 부작용이 있다.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스타트업이 주52시간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복잡미묘하다. 스타트업 재직자(250명)의 경우 긍정적 인식(46.0%)이 부정적 인식(15.6%)보다 높았다. 근무만족도(42.7%)와 업무효율성(39.3%)이 좋아진다는 판단에서다. 스타트업 창업자의 경우 긍정적 인식(34.3%)과 부정적 인식(33.5%)이 엇비슷하다. 창업자·재직자 모두 “노동자의 ‘워라밸’을 위한 제도”라고 좋게 평가하는 동시에 “일률적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한계를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스타트업이라도 유연하게 근로시간을 책정할 수 있도록 ‘완충지대’를 만들라는 것이다. 중앙대 안충영(전 동반성장위원장) 석좌교수는 “유연근무가 필수적인 곳에서 주52시간제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지식집약 혁신기업을 활성화하려면 획일적 주52시간제를 선택적 유연근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혁신형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전문직 노동력은 제조업에 비해 노동유발계수가 높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라도 근무시간 탄력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