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시의원 경력을 내려놓고 9년 전부터 무보수 연탄 산타로 거듭난 교회 장로가 있다. 대한민국 최다 입양 가정으로 11명 자녀와 함께 겨울철 연탄 봉사의 구원투수로 투입되는 목회자 부부도 있다. 강원도 강릉과 주문진 일대 가난한 어촌 마을의 연탄 이웃들을 돌보는 강릉연탄은행 사람들 이야기다.
지난 3일 경포호에 인접한 강릉중앙감리교회(이철 목사) 앞마당에서 경차 모닝을 타고 온 왕종배(67) 장로를 만났다. 모닝 옆문엔 빨간색 바탕에 흰 글씨로 ‘강릉연탄은행’이라고 새겨져 있다. 왕 장로의 공식 직함은 강릉연탄은행 부대표이다. 그가 수년 전 사비로 장만한 경차를 바라보며 말했다.
“강릉 시내와 주문진 어촌의 비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니기엔 경차가 딱 맞습니다. 주행거리가 20만㎞를 넘었어요. 아직도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 칼바람을 맞으며 공중 화장실을 사용하는 어촌 마을이 있습니다. 그런 집들에 연탄을 넣어주는 겁니다. 바다가 비어가면서 고기잡이도 잘 안 되는지 주문진 연탄 가구는 줄어들지를 않습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차상위 가구인데 겨울을 나려면 집마다 연탄 1200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나오는 건 500장 정도입니다. 그 부족분을 연탄은행이 나눔과 봉사로 채우고 있습니다.”
왕 장로는 건설업체 대표 경력으로 1995년 제1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으로 당선돼 3선을 했다. 강릉시장에 도전해 보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2010년 강릉중앙감리교회에서 장로 직분을 받은 뒤에는 모든 직함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강릉연탄은행을 중심으로 푸드뱅크와 요양원 및 모자원을 돌보는 일을 무보수로 하고 있다. 정치를 등지고 봉사에 매진하는 삶은 어떨까.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건 의정활동 때도 잘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대림절 기간인데 아기 예수님은 어려운 이웃들 한가운데에서 나셨습니다. 마구간이 오늘날 연탄 가정처럼 느껴집니다. 그분들에게 쌀과 연탄을 나누며 복음도 같이 전달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왕 장로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김상훈(60) 강릉아산병원 원목이 찾아왔다. 김 목사는 강릉중앙감리교회 파송으로 병원에서 아픈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윤정희 사모와 함께 상처가 많은 아이 11명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대한민국 최다 입양 부부로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았다(국민일보 2019년 5월 21일자 33·34면 참조). 이들 가족은 강릉연탄은행이 봉사자 일시 부족으로 연탄 배달에 어려움을 겪을 때 구원투수로 단체 등판하곤 한다. 김 목사는 “겨울철마다 7년째 아이들과 연탄 봉사를 하는데 연탄을 나르는 동안 굳게 닫혔던 아이들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윤 사모는 “연탄을 배달하는 날이 우리 집 외식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는 “봉사를 마치면 아이들과 칼국수나 자장면을 먹으러 가는데, 아직 어린 아이들은 연탄 배달보다 칼국수 먹는 게 좋아 신이 나서 따라나선다”고 전했다.
왕 장로는 김 목사 부부가 없는 곳에서 “11명 아이를 키우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매년 1000장씩 연탄 나눔을 잊지 않는 존경스러운 목회자 가정”이라고 귀띔했다.
강릉연탄은행을 비롯해 강원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푸드뱅크와 모자원 요양원 등은 모두 강릉중앙재단에 속해 있다. 강릉중앙재단은 강릉중앙감리교회가 디아코니아를 위해 세운 곳으로 이철 목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목사는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게 교회의 사명”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지역을 섬기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경북과 함께 연탄을 사용하는 기초수급자 및 차상위 가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전국 10만여 연탄 가구 가운데 강원도가 2만2000여 가구로 5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서울은 재개발로 연탄 가구가 줄고 있지만, 지방의 농어촌 산간마을의 연탄 가구는 여전하다.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 허기복 목사는 “농어촌 오지는 배달이 어려워 연탄 가격이 비싸다. 나눔과 봉사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면서 “다가오는 성탄에 연탄으로 이웃 사랑이 확산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강릉=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