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년전 폭스뉴스 보다가 한국서 美민간인 소개령”

입력 2019-12-11 04:07
사진=AP뉴시스

‘좌충우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탓에 미국 행정부가 겪고 있는 난맥상이 또 폭로됐다. 북·미가 서로를 향해 거친 말폭탄을 쏟아내며 전쟁 위기가 고조됐던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있는 미국 민간인들을 본국으로 귀국시키는 소개령을 검토했다는 내용이다. 친(親)트럼프 언론인 폭스뉴스를 보다 내린 대통령의 즉흥적인 결정에 당시 관료들은 패닉에 빠졌다.

미 국방부를 놀라게 만든 트럼프 대통령의 황당한 일화는 CNN방송에서 국가·안보 해설가로 활동하는 피터 버겐이 10일(현지시간) 출간한 ‘트럼프와 장군들: 혼돈의 비용’에 자세히 소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9월 초 평소처럼 폭스뉴스를 시청하다 뜬금없이 국가안보팀에 연락해 “한국에 있는 미국 민간인들이 그 나라에서 떠나길 원한다”고 말했다.

당시 뉴스에 출연한 잭 킨 전 육군참모총장이 “미국이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북한에 보내기 위해서는 주한미군 가족들을 한국에 보내는 일을 중단하고 군인들만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즉흥적인 명령을 내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정식 보고체계를 거쳐 올라온 정보보다 자신이 관심 있는 뉴스 보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비정상적으로 국가안보 정책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킨 전 참모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선’ 국가안보 고문으로 알려져 있다.

버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명령을 내렸을 때 관료들은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차 “미국인들을 빼내야 한다”고 명령하자 백악관 고위 관리는 “미국이 전쟁에 돌입할 준비가 돼 있고 한국 증시는 폭락할 것이라는 그릇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만류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하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담당 부처인 국방부는 혼란에 빠졌지만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매티스 등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명령을 무시했고 이후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생각을 단념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겐은 “매티스 전 장관이 백악관의 지시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여러 사건 중 하나”라고 책에 썼다.

2017년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세계 각국 정부가 한국에 체류 중인 자국민들을 귀환시켜야 하는 게 아닌지 노심초사했다는 사실은 지난 1월 빈센트 브룩스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의 방송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각국 정부가 브룩스 전 사령관에게 직접 자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한국에서 자국민을 빼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이 알려진 건 처음이다.

한편 미국 의회는 주한미군 규모를 유지하는 내용의 내년도 국방예산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은 미국 상·하원 군사위원회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내년도 국방예산법안(NDAA)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법안 내용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현재 2만8500명인 주한미군 규모를 임의로 줄일 수 없다. 올해 국방수권법에 명시된 2만2000명의 주한미군 하한선을 6500명 늘린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군 규모를 축소하려면 국방장관의 축소 조처가 국가안보에 부합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 분담금을 5배 증액하라고 요구하면서 주한미군 감축을 협상 카드로 쓰는 듯한 모습으로 비쳤지만 미국 의회는 주한미군 규모를 유지하라는 메시지를 예산법안에 담은 것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