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동원 피해자·유족 배상 판결에 큰 몫

입력 2019-12-11 04:05

31년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유족들의 고통을 보살피고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싸워온 이금주(99·사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이 ‘2019 대한민국 인권상’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0일 세계인권선언 71주년을 맞아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기념식을 열고 이 회장에게 인권상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이 회장의 남편 김도민씨는 결혼한 지 2년도 안 된 1942년 일본 해군에 징집된 후 미군과의 전투 중 사망했다. 남편과 강제로 이별해야 했던 이 회장은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를 결성했다. 이후 30년 넘게 같은 처지인 피해자들의 인권을 위해 힘썼다.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1992년 광복 후 최대 규모 집단소송인 ‘천인 소송’을 비롯해 7건의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던 건 이 회장의 끈질김 덕이었다. 그는 일본 법정에서 계속 기각을 당하면서도 일본을 80여 차례 방문하며 법정 다툼을 이어갔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지난해 11월 한국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은 이 회장의 투쟁에 일정 부분 빚지고 있다”고 했다. 인권위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 회복을 위해 큰 주춧돌을 남겼다”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이 회장은 2013년부터 노환으로 대외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국언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대표는 “활동하실 때는 나약하게 보일까봐 남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는데, 병석에 계시면서는 남편에 대한 추억이나 그리움을 많이 이야기하신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남은 생이 길지 않은 이 회장님이 바라는 것은 일본의 제대로 된 사죄뿐”이라고 했다.

올해 인권위원장 표창 수상자로는 박란이 춘천남부노인복지관장, 방주현 국립공주병원 간호주사보, 정수형 부산지방경찰청 경사, 서미향 서천중 교감,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성과재생산포럼이 선정됐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혐오와 차별을 그대로 두면 다시 과거 참혹했던 시기로 돌아갈 수 있다”며 “누구나 존엄한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함께해 달라”고 당부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