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탄지니아, 끝없는 대평원에서 작은 나를 발견한다

입력 2019-12-11 21:32
세렝게티엔 한낮의 야성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밤의 적요와 이른 아침의 안온한 풍경에서도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더 넓은 초원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놀이 세렝게티의 부산함을 잠재우고 있다. 탄자니아 관광청 제공

힘들었지만 행복한 여정이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생명이 산다는 곳, ‘아프리카의 아프리카’로 불리는 땅, 탄자니아는 내게 그렇게 각인됐다. 탄자니아는 마사이어로 ‘끝없는 대 평원’이란 뜻의 세렝게티(Serengeti)국립공원, 세계 최대의 분화구인 응고롱고로(Ngorongoro) 자연보호지역,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고향인 잔지바르 섬 등을 품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동남쪽에 인도양을 마주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새벽 1시 조금 넘어 출발,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꿔타고 탄자니아 서북부 킬리만자로공항에 도착했다. 운항시간과 대기시간을 포함해 16시간 정도 걸렸다. 킬리만자로공항에서의 입국 과정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적어도 입국 10일 전에 황열병 예방 접종을 해야 하는데 일행 중 몇명이 출국이 임박해 주사를 맞은 것이 문제가 됐다. 한국에서부터 동행한 탄자니아 정부 관계자 덕에 별일없이 들어갔지만 일반적으로 1인당 미화 50달러 정도의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탄자니아 북동부 중심 도시 아루샤를 거쳐 세렝게티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바오바브 나무가 눈에 띄었다. 높이 20m 둘레 10m 정도에 술통처럼 생긴 몸통의 바오바브가 아프리카에 왔음을 실감케 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며 사바나 초원을 붉게 물들였다. 길가에 진홍빛 바탕에 검은색 격자무늬의 마사이 담요를 걸친 마사이 소년이 보였다. 차를 세워 같이 사진을 찍었다. 관광객들이 이동하는 길가 주변에는 마사이 주민들이 흔히 보인다. 함께 사진을 찍고 약간의 팁을 받는다. 마사이 원주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부락 중에는 관광코스로 개방하는 곳이 있다. 한 사람당 10달러 정도를 내면 전통 춤을 보여주고 집안을 공개하기도 한다.

관광객을 태운 사파리 차량들이 쌩쌩 옆을 지나쳐도 무심한 듯 사자들이 낮잠을 자고 있다.

흙먼지 길을 달려 세렝게티에 들어섰다. 세렝게티 국립공원 표지석 아래 ‘세렝게티는 결코 죽지 않는다’(Serengeti Shall Never Die)라고 새겨져 있다. 경북 크기만 한 넓은 땅에 400여만 마리의 야생동물이 사는 곳의 거대함과 영원성을 함축한 듯했다. 첫인상의 세렝게티는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악어가 가득 찬 그루메티 강(Grumeti river)으로 돌진하는 수만 마리의 누우떼가 나오는 ‘위대한 이동’(The Great Migration)의 현장이나 초식동물을 쫓아 질주하는 맹수는 볼 수 없었다. 이런 장면을 방영하는 TV 다큐멘터리에 익숙한 나로서는 듬성듬성한 나무 몇 그루 아래로 광활하게 펼쳐진 잿빛 초원이 낯설었다. 현지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있는 세렝게티는 계절(우기와 건기)과 지역에 따라 초지의 상태와 동물들의 움직임이 확연히 구분된다고 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수목이 우거진 서북부 목초지가 아니었고, 시기 역시 누와 얼룩말떼가 이동하는 계절이 아니었다. 대체로 5~8월, 11~2월이 동물들의 대이동을 보기 가장 적당하다고 한다.

영상 속의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자연 그대로의 세렝게티는 그 자체만으로 위대했다. 고개만 들면 눈에 띄는 수백 마리의 임팔라와 톰슨가젤의 기민한 움직임, 여유롭게 걷는 듯 뛰는 듯 움직이는 타조 가족들, 무심한 듯 나무 밑에서 낮잠을 즐기는 사자 무리들, 태양 볕이 싫은 듯 사파리 차량 밑 그늘에 앉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은 암사자 한 마리의 느긋함을 볼 수 있는 곳이 세렝게티였다. 내가 탄 차량에서 불과 2~3m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에 사자가 앉아 있다니…. 이곳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해 볼 수 있을까 싶었다. 가까이 서 본 기린은 정말 컸다. 점박이 무늬가 선명한 기린이 자신보다 낮은 관목과 풀 사이로 껑충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재빨리 포착했다. 얕은 웅덩이에는 하마 10여 마리가 물속과 물 밖을 번갈아 들락거리더니 ‘따따다다’라는 소리를 내며 앙증맞은 꼬리로 배설물을 털어내기도 했다.

세렝게티의 밤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석양인가 싶더니 곧 사위가 깜깜해졌다. 숙소는 세렝게티와 인접한 롯지(lodge). 도심의 호텔 같은 깔끔한 시설은 아니었지만 자연과 바로 교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좋았다. 음식도 비교적 입에 맞았고 종업원들은 친절했다. 밤에는 절대 혼자 이동하지 말고 직원과 반드시 동행하라는 주의사항이 전달됐다. 방 열쇠에 호루라기가 달려있다.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호루라기를 불어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다.

기린 가족들이 껑충하게 초원을 가로질러 가고 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여명 사이로 얼룩말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게 보였다. 창문을 열고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지척이다. 자연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음을 실감했다. 이른 아침 해뜰 무렵 세렝게티는 한낮의 야성(野性)과는 표변한 정경을 드러냈다. 삽상한 바람을 뚫고 새들은 지저귀고 그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롯지 곳곳을 비췄다. 전날의 고된 여정을 일순에 날려버리는 평온한 아침이다. 세렝게티의 핵심은 낮의 부산함이다. 살아 움직이는 동물의 역동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객들은 시간과 돈을 쓰며 찾는다. 그러나 밤의 적요와 이른 아침의 평온한 느낌 또한 세렝게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탁월한 경험이다. 여행은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변화시키는 경험이라고 한다. 세렝게티는 장엄한 대자연 속에서 작은 나를 발견하는 기회였다.

여행메모

황열병 예방접종 필수… 마스크·물티슈 챙겨야


탄자니아에 가기 위해서는 비자를 받아야 한다. 지난 11월 5일부터 전자비자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에 대사관을 직접 찾을 필요가 없다. 온라인(www.immigration.go.tz)으로 접속하면 비자발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입국 10일 전 황열병 예방접종을 받았다는 증명서를 입국시 반드시 내야 한다. 접종은 국립의료원, 순천향대병원 등 몇 곳에서 가능하다. 말라리아 접종은 필수가 아니다. 모기 기피제를 넉넉하게 준비해 수시로 뿌리면 된다. 탄자니아 현지 숙소는 모든 방의 침대에 모기장을 쳐 놓고 있다.

항공편은 주 5회 인천과 아디스아바바를 운항하는 에티오피아 항공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세렝게티는 3박 정도는 해야 비교적 여유있게 즐길 수 있다. 사파리투어는 비포장길을 하루에 짧게는 수 십㎞, 길게는 100㎞ 이상 이동한다. 평균 시속 60~70㎞로 달리는 차안으로 들어오는 먼지란 먼지는 다 마신다. 마스크와 물티슈는 필수고 생수도 꼭 챙겨야 한다. 챙이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 선크림 역시 필요하다.

공식통화인 탄자니아실링은 환전소에서 1달러에 2200~2300실링이지만 현지 상점에서는 2000실링으로 친다. 돈을 쓸 일이 있으면 입국 후 현지 공항에서 환전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에 크게 못미치지만 관광물가는 싸지 않다. 2ℓ콜라 한 병이 1500원 정도이고, 반 팔 티셔츠 한장이 1만원, 도심에서 한끼 식사를 할 경우 10~15달러가량 든다.

탄자니아에서는 휴대전화 유심카드를 사용하는 게 아주 불편하다. 여권 복사뿐 아니라 당사자 증명사진까지 촬영하는 등 처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통화품질이 좋지 않다. 아프리카 중에서는 치안이 괜찮다고 하지만 대낮이라도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금물이다.

세렝게티(탄자니아)=정진영 기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