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치권 뒤흔드는 89년생… 사민당의 ‘영 파워’

입력 2019-12-10 04:08

1989년생 정치인이 독일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독일 사민당(SPD)의 청년 조직을 이끌고 있는 케빈 퀴네트(사진)가 주인공이다. 퀴네트는 중도좌파 노선을 견지하며 지난 10년간 중도우파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과 손잡고 대연정을 구성했던 사민당을 뿌리부터 개조시키고 있다. 선명한 좌파 노선을 외치며 당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기민당 소속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끌어온 ‘10년 대연정’이 붕괴 위기에 봉착했다.

로이터통신은 8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열린 사민당 전당대회에서 퀴네트 청년 사민당 의장이 가장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전당대회 첫날인 지난 6일 ‘메르켈 대연정’에 부정적인 노르베르트 발터-보르얀스와 자스키아 에스킨이 대의원 투표를 거쳐 공동대표로 추인됐지만 8일까지 이어진 전당대회 기간 내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한 건 퀴네트였다. 독일 언론들은 2017년 11월부터 청년 사민당을 이끌고 있는 퀴네트를 조명했다.

유력 주간지 데르 슈피겔은 퀴네트를 사민당의 머리 위에서 당을 탈바꿈시키는 사람으로 묘사하며 “공동대표에 오른 두 약소 후보의 승리는 곧 퀴네트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정치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두 신임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청년 사민당 당원들에게 몰표를 받았다. 8만표에 달하는 이들의 표는 전체 당원의 5분의 1에 달했는데 퀴네트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동원한 것이었다. 트위터에서만 15만2000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퀴네트의 영향력이 중도 성향 후보들을 패퇴시킨 것이다. ‘대부’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사람’ ‘사민당 새 왕좌의 막후 실력자’ 등으로 불리는 퀴네트는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사민당 부대표 중 한 명으로 선출되며 지도부에 입성했다.

퀴네트의 급부상은 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잃고 헤매는 사민당의 현실에서 비롯됐다. 나치에 저항하고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 탁월한 정치 리더들의 지도하에 한때 40% 지지율을 기록했던 유서 깊은 정당은 애매한 행보 속에 지지율 10%대의 변변찮은 정당으로 쪼그라들었다. 청년 당원들은 녹색당으로 떠났고, 전통적 지지층인 노동자들은 좌파당과 극우세력인 독일대안당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급진적인 노동·사회 정책, 부유세, 야심찬 녹색 이슈 선점으로 요약되는 퀴네트의 선명한 좌파 색채는 당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고 있다. 사회 경험이라고는 콜센터 직원 3년이 전부인 퀴네트가 독일 기성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퀴네트는 사민당이 좌파 정체성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가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해 초 당내에서 메르켈 보수 대연정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두각을 드러낸 그는 올해 초 ‘BMW 등 대기업의 집단 소유’라는 도발적 담론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전당대회 연설에서 “사민당을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을 계속하며 당의 비전을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