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가 말폭탄을 주고받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해외 언론과 미국의 전 국방장관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 위협을 줄이지 못한 채 동맹 관계만 흔들어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북·미 비핵화 협상을 실패로 규정하고,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재고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 가디언은 8일(현지시간) ‘북한 문제에 대한 가디언의 관점: 핵 위기의 심화’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남한은 북한의 위협이 감소할 것이고 미국이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비핵국가 지위(nuclear-free status)를 유지해 왔다”면서 “(현재로선) 남한은 비핵국가 지위를 재검토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위협이 여전하고 미국이 확실히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남한에서 핵무장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가디언이 언급한 비핵국가 지위는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또 북·미 양측이 비핵화 개념을 둘러싼 입장차를 조금도 좁히지 못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비핵화 개념의 의미를 두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놓인 간극을 무시해버린 탓에 지금까지의 진전은 사실상 허상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북한도 미국과 전쟁을 벌이기보다는 그들에게서 양보를 받아내고 싶어한다”면서도 “하지만 (북·미 사이에) 오해와 오판이 빚어질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에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등 동맹을 경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디언은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을 홀대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며 “북한 정권이 무심한 태도로 문재인 대통령을 다루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전직 국방장관들도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접근법을 비판하며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 CNBC방송은 트럼프 행정부 초대 국방장관을 지낸 제임스 매티스와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장관이었던 리언 패네타가 한 포럼에서 한목소리로 “미국의 힘은 동맹에서 비롯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매티스 전 장관은 “지금은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미국)는 동맹 없이 가거나 심지어 동맹에 맞서기까지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매티스는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선언에 ‘동맹에 타격이 된다’며 사임했다.
패네타 전 장관 역시 매티스와 의견을 같이했다. 그는 “미국의 힘은 동맹국 및 그들과 함께 일하는 역량에서 비롯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 사람들이 제값을 확실히 지불하도록 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은 그 임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패네타 전 장관은 “북한은 여전히 과거와 같거나 그 이상의 위협이 된다”며 성과 없는 북·미 정상회담의 원인으로 동맹을 등한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를 꼽았다. 그는 대북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장지영 조성은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