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봄, 아주대학교에 입학한 한혜경(사진)씨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사진을 배우는 일이었다. 시각장애를 안고 있는 한씨에게는 대학 입학에 이어 다시 한번 벽을 허무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괜한 욕심을 부린 건 아닌지 걱정했다. 빛조차 볼 수 없는 내가 카메라와 사진, 빛, 조리개의 원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첫 수업부터 장벽이 가로막았다. 교수는 영상을 하나 틀었다. 배경음악이 잔잔하게 깔려 있지만 내레이션이나 설명이 없었다. 다른 학생들이 영상을 보며 이런저런 반응을 할 때 한씨는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한씨 공부를 돕는 도우미 학생이었다. 영상에 담긴 사진들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내용이었다. 영상 속 사진 분위기를 이해하고도 남을 친절한 설명이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여기저기 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즐거운 경험이 하나둘 쌓이면서 카메라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차츰 사라졌다.
한씨의 대학 생활을 돕는 이들은 국가와 학교로부터 장학금이나 인건비 지원을 받는 장애학생 도우미 프로그램 참가자다. 그러나 단순히 계약 관계를 넘어 우정을 쌓아 갔다. 한씨는 “친구들은 ‘나를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었다’며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친구들 응원이 나를 당당한 도전자로 세웠다”고 말했다. 도우미 친구들은 평소에 한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고 덕분에 공항에 시각장애인 안내 서비스를 알아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해 한씨는 혼자 제주도 여행을 떠나는 용기를 내기도 했다.
한씨는 장애학생 도우미에 도전했다. 마침 청각장애 학생이 원어수업을 들으려는데 대필 도우미가 구해지지 않아 애를 태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씨는 도우미로서 첫 수업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노트북과 무선 키보드를 챙겼다. 도움받는 학생은 한씨보다 나이 많은 언니였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에도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청각장애인은 들을 수 없으니 언어능력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해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한씨는 교육부·국가평생교육진흥원 주관 ‘장애학생 도우미 지원사업 체험수기 공모전’에 자신의 도전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2016년 봄은 참 예뻤다. 계절도 나의 시절도 아름다웠다”로 시작하는 체험 수기를 쓰기 시작했다.
한씨는 공모전에서 대상(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상)을 받게 됐다. 한씨처럼 장애를 극복하며 장애-비장애인이 서로 성장한 이야기 15개가 선정됐다. 서강대와 연세대는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서강대는 장애학생 동아리·수련회·영어캠프, 연세대는 휠체어리프트 차량으로 학내 이동을 돕는 프로그램 등이 호평을 받았다. 시상식은 10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