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고용의 최대 주체는 기업이다. 공공부문의 비중이 커졌지만, 민간 기업의 ‘야성적 충동’이 살아나지 않으면 경제 활력 회복은 기대할 수 없다. 2년 연속 재정지출을 크게 늘렸지만, 경기의 추가 하강을 막지 못하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20년 기업 경영 전망 조사’는 기업들의 암울한 현실 인식을 잘 나타낸다. 간단히 말하면 기업들은 내년은 물론 그 이후로도 경제 상황이 별로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응답 기업의 64.6%가 현 경기 상황을 ‘장기형 불황’이라고 평가했다. 장기형 불황은 경기가 저점에 이르렀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게걸음을 하는 것이다. ‘L자형 불황’이라고도 한다. ‘경기 저점에 도달해 일정 기간 유지 후 회복 전망’은 16.6%, ‘경기 고점을 지났고 점차 하락’은 13.1%였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보는데 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나 채용을 할 리 없다. 응답 기업 중 절반에 가까운 47.4%가 내년에 긴축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내년 투자 계획에 대한 질문에도 ‘축소하겠다’는 응답이 39.4%로 가장 많았다. 한국은행 총재는 “경기가 바닥을 다지는 중”이라고 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경기 하강이 멈췄는지 모르지만, 회복은 멀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주요한 경제주체인 가계의 소비 환경도 악화일로다. 최근 한 달간 외국인은 코스피시장에서 5조원 이상을 팔았다. 기업 실적 악화와 글로벌 자산 포트폴리오 재편 때문만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경제의 중장기적 성장 전망을 어둡게 본 외국인들이 ‘셀 코리아’를 넘어 ‘탈(脫) 코리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실물경기도 안 좋은데 증시마저 힘을 잃으면 소비는 더 가라앉을 수 있다. 주가 등 자산가치 상승으로 소비도 증가하는 부(富)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민간소비 증가율이 둔화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이다. 이번 경총 조사에서 기업들은 내년 경영 환경의 주된 애로 요인으로 노동정책 부담(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33.4%), 내수부진(29.1%), 대외 여건 불확실성(16.8%)을 꼽았다. 노동제도 개선 등 기업이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정책적 노력을 집중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사설] 기업 65%가 장기 불황 예상… 심각한 산업 현장
입력 2019-12-10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