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지근한 신앙은 악의 타깃… 열정 가득해야

입력 2019-12-11 00:05

성장하는 교회는 열정적 신앙이 가득해야 한다. 23년 전 거룩한빛광성교회를 개척할 때 성장하는 교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위 성장했다는 교회를 찾아 성장의 이유를 관찰했다. 목사의 설교가 좋거나 심방을 잘하거나,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성장한 교회들이 있었다. 건물을 잘 지어 성장한 사례도 있었다. 반면 담임목사의 설교가 좋고 멋진 예배당을 마련했는데도 성장하지 못한 교회가 있었다.

성장의 요인이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자세히 살펴보니 성장하는 교회의 공통분모는 ‘열정’이었다. 한결같이 열정적인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었다. 열정이 중요하다. 예수님도 누구보다 열정적이셨다. 주님은 자신이 열정적이셨기 때문에 열정적인 사람을 좋아하셨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은 예수님을 ‘아멘이시며 충성 되신 분’으로 묘사한다.

‘아멘이시오’라는 말은 ‘진실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충성되다’는 ‘열정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실하고 열정적인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미지근하여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5~16) 두렵고 떨리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라오디게아교회에서 북쪽으로 11㎞ 떨어진 곳에 히에라볼리라는 온천 도시가 있다. 펄펄 끓는 온천수가 넘쳐 나오는 곳이었다. 거룩한빛광성교회가 있는 일산에도 과거 차가운 우물이 있었던 것 같다. 일산 신도시 안에 냉천(冷泉)초등학교가 있다는 사실에서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정작 라오디게아는 물 사정이 좋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히에라볼리 온천을 찾고 골로새의 냉천으로 가 물을 길어 왔다고 한다. 대신 라오디게아에는 식수로 쓰기에는 따뜻하고 목욕을 하기에는 미지근한 물이 있을 뿐이었다. 알아주는 이 없는 물이었던 셈이다.

세상에도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 길짐승도 아니고 날짐승도 아니면 박쥐처럼 버림받게 마련이다. 신앙도 그렇다.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을 지닌 사람들은 결국 내쳐진다. 과거 어머니들은 아기가 소화가 안 돼 배탈이 나면 자신의 손가락을 아기 목까지 넣어 ‘토악질’을 하게 했다. 그래도 안 되면 미지근한 물에 소금을 타 먹였다. 그럼 아기가 결국 토하고 만다. 이렇게라도 해서 아이의 배를 편하게 만들었다.

라오디게아 지방의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미지근하면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미지근한 신앙으로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 미지근한 영성을 갖고는 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마귀를 대적해 이길 수 없다. 뜨거운 커피나 냉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있어도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없다.

신앙이 미지근한 사람은 악의 타깃이 된다. 온갖 죄악의 유혹이 밀려들게 돼 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과 영성을 품어야 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불을 붙일 수 있는 열정을 가질 때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혁하는 위대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

가정과 직장, 이웃에게 믿음의 불을 붙일 수 있는 열정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사 59:17)

‘하나님의 겉옷은 열심’이라는 말씀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은 열심히 우리를 추적하신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도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진다. 예수님도 지금 하늘 보좌에서 열심히 우리를 변호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과 예수님의 열심을 본받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신앙이 뭔가 미지근하다고 판단된다면 불타는 열정을 달라고 기도하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열정의 사람이 됐다. 복음의 용광로를 통과했기에 열정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을 던지게 돼 있다.

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