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6개월… 세계 인권의 날 맞아 대규모 집회

입력 2019-12-09 04:04
거리를 가득 메운 홍콩 민주화 시위대가 8일(현지시간) 빅토리아 공원에서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로 행진하며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이고 있다. 미국 성조기도 곳곳에서 보인다. 다섯 손가락은 행정장관 직선제, 송환법 공식 철회, 체포된 시위 참여자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등 시위대의 5대 요구사항을 의미한다. 연합뉴스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6개월을 맞은 가운데 8일 홍콩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시민들은 홍콩 섬 거리를 가득 메운 채 ‘광복홍콩 시대혁명’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친중국 성향의 점포를 파괴하거나 법원 청사를 공격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시위를 마무리지었다.

홍콩 재야단체 연합 민간인권전선은 이날 빅토리아 공원에서 수많은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유엔이 정한 세계 인권의 날(10일) 기념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이날 시위에 참석한 인원이 80만명이라고 추산했다. 이날은 지난 6월 9일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지 6개월이 되는 날이자 시위 현장에서 추락해 지난달 8일 숨진 홍콩과기대생 차우츠록씨 사망 한 달이 되는 날이다.

시민들은 빅토리아 공원 집회 후 오후 3시쯤부터 최대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와 홍콩정부청사가 있는 애드머럴티, 경찰본부가 있는 완차이 등을 지나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까지 행진했다. 시민들은 “5대 요구,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거나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과 함께” “폭력경찰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행진을 하면서 친중국 성향의 맥심그룹이 운영하는 스타벅스 점포의 유리문을 부수고, 센트럴에 있는 중국은행 홍콩 본부 건물 벽에 붉은 스프레이로 구호를 적어놓기도 했다. 홍콩 고등법원 정문에도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에 그을린 흔적이 눈에 띄었고 “법의 통치는 죽었다”는 구호도 적혀 있었다. 일부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했다.

홍콩 경찰은 지난 7월 21일 시위 이후 폭력 사태를 우려해 민간인권전선이 신청한 행진을 불허했으나 이날 집회와 행진은 허가했다. 다만 주최 측에 시위 시작 및 종료시간, 경로를 지키고 홍콩 깃발이나 중국 오성홍기를 모욕하지 말 것, 공공질서 위협이 있으면 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경찰은 지난 10월 20일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져 수배됐던 시위대 11명을 체포하고 이들이 갖고 있던 총기 등을 이날 압수했다고 밝혔다. 홍콩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의 총기가 압수된 것은 처음이다. 경찰은 “11개 장소를 급습해 남자 8명과 여자 3명 등 20~63세 시위대 11명을 체포했다”며 “이 과정에서 반자동 권총과 탄창 3개, 탄알 105개, 칼, 최루 스프레이 등을 압수했다”고 말했다.

홍콩 경찰의 신임 총수 크리스 탕 경무처장은 전날 베이징에서 기자들과 만나 강경책과 온건책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탕 경무처장은 베이징에서 중국의 사법·공안 계통을 총괄지휘하는 궈성쿤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와 장샤오밍 홍콩·마카오 판공실 주임, 자오커즈 공안부장을 만났다. 궈 서기는 “폭력과 혼란을 제압하고 사회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현재 홍콩의 가장 긴박한 임무”라고 강조했다.

한편 홍콩에 있는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단이 전날 마카오 입국을 거부당하고 몇 시간 동안 억류됐다가 되돌아갔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트(SCMP)가 보도했다. 홍콩 주재 미 상의는 성명에서 “로버트 그리브스 회장과 타라 조지프 사장이 마카오에서 열리는 연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마카오를 찾았다가 입국을 거부당했다”며 “자발적으로 마카오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는 진술서에 서명하고 나서야 홍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홍콩인권법 통과 후 중국이 예고한 대로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