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사나이가 왕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혹시 자기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죄가 있어서 왕에게 벌을 받게 될까 봐 혼자 가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에겐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친구는 가장 소중했고, 두 번째 친구는 덜 소중했습니다. 세 번째 친구는 친구라고 생각은 했지만, 가끔 생각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사나이는 먼저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함께 가자고 부탁을 했지만 거절당합니다. 두 번째 친구에게도 부탁했지만 “궁궐문 까지는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친구에게 부탁했을 때 그 친구는 의외의 답을 합니다. “기꺼이 같이 가주지. 자네는 아무 죄도 지은 것이 없으니까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네. 내가 함께 가서 왕께 그렇게 말씀드려주겠네.”
이 이야기는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왕은 하나님을 뜻하고 왕에 부르심은 우리의 죽음을 뜻합니다. 첫 번째 친구는 이 땅의 재산이나 명예나 권력을 뜻하고, 두 번째 친구는 우리의 가족 친척 친구를 뜻합니다. 세 번째 친구는 하나님과의 관계(믿음)를 말합니다. 사람은 모두 다양한 환경 가운데 태어나고 신분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삶을 살지만,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같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홀로이기에 교만할 수도 없고 평등합니다.
오늘 본문에 한 부자가 나옵니다. 그해 농사는 엄청난 풍년이어서 수확이 예년보다 훨씬 많이 나왔습니다. 부자는 거두어들인 곡식을 저장해 둘 곳이 없어서 걱정하다가, 할 수 없이 창고를 부수고 더 큰 창고를 짓기로 합니다. 창고를 지을 때 혹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면 편히 잠을 잘 수 있었겠습니까. 겨우 창고를 완성한 다음 부자는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19절)
이 이야기의 끝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무슨 말입니까. ‘이만하면 이젠 됐다,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하던 바로 그때, 여러 해 쓸 것이 넉넉하다고 한 그때, 바로 오늘 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혼을 도로 찾으시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도로 찾으리니”란 말은 주님이 다시 찾아가신다고 할 때 그분 앞에 우리를 힘없이 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것을 전세 내어 살고 있는 채무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청지기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으신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모든 걸 요구하시면 내가 소유했던 생명, 자녀, 돈, 명예 등을 하나님께 다 돌려 드려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돈에 의지하고 권력에 의지하고 자기 지식이나 학벌이나 명예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을 위해서는 신앙생활의 열심을 져버립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영혼의 때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대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영원한 생명을 향해야지 이 땅의 부요와 축복 때문은 아닙니다. 변치 않는 최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자만이 기쁨과 감사로 주를 위해 충성하는 신앙인으로 내 영혼의 때를 준비 할 수 있습니다.
언제라도 내 육체의 기간이 다하면, 주님이 갑자기 부르시면 내 영혼의 때가 찾아옵니다. 삶 속에 예수님의 삶과 모습이 재현되는 사람들은 천국에 이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영혼의 때가 찾아왔을 때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근재 교수(주안대학원대 교수)
◇유근재 교수는 침례신학대를 졸업하고 영국 버밍엄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안대학원대학교 선교학 교수와 침례신학대 객원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서울 금란교회 협동목사와 한국선교신학회 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