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그만” 레드라인 밟은 北… 트럼프 “지켜보겠다”

입력 2019-12-09 04: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로 향하기 전 백악관 남쪽 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년) 미국 대선에 개입하기(interfere with)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비핵화 이슈는 (북·미)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며 미국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북한이 미국 대선에 개입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적대적으로 행동한다면 나는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나는 그가 무엇인가 일어나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관계는 매우 좋지만 약간의 적대감이 있으며, 그것에 대해선 의문이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의 적대적 행동 가능성에 대해 “놀랄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만류와 경고의 신호를 동시에 보냈다. 또 북한의 대선 불개입을 기대했지만 “지켜봐야 한다”면서 의심의 시선을 버리지 않았다.

김 대사의 언급에 대해서는 “지켜보겠다”고만 답했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김 대사가 “비핵화 이슈는 (북·미)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김 대사의 주장은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그동안 북한이 미국에 경고했던 수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통신은 분석했다.

김 대사는 로이터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대화는 미국 내 정치 어젠다를 고려한 ‘시간 벌기 속임수(time-saving trick)’”라고 비판했다. 김 대사가 언급한 미국 내 정치상황은 2020년 미 대선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김 대사는 “우리(북한)는 지금 미국과의 긴 대화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대사의 주장대로 북한이 비핵화 이슈를 북·미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비핵화 이슈는 북·미 대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미국으로부터 대북 제재 해제와 대북 적대정책의 폐기를 얻어내기 위해 북한이 고의적으로 엄포성 주장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북한이 미국 대선까지 끄집어내면서 미국을 압박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동안 유예했던 핵 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해 미국 대선에 변수를 던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 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자제했던 것을 외교 치적처럼 자랑해 왔는데 북한이 도발을 재개하면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미국에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면서 내건 연말 시한이 다가오면서 북·미 사이에 오가는 말이 거칠어지고 있는 것은 위험스러운 징후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일 영국 런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2년 만에 ‘로켓맨’이라고 부르면서 군사력 사용을 시사하자 북한 외교의 실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실언이 아니라 의도적인 표현이라면) 정말로 늙다리의 망령이 다시 시작된 것으로 진단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을 감행할 경우 자칫 북·미 관계가 충돌 상황으로 급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