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진창수] 남북관계 플랜B 모색할 때

입력 2019-12-09 04:04

북한이 ‘새로운 길’을 연일 주장하는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무력 사용 감행을 시사하면서 추웠던 2017년 겨울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연이어 미국을 비판하면서 한국에 선택을 강요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과의 대화는 시작했지만, 징용공 문제로 한·일 관계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다. 한국에겐 사면초가의 형국이다.

내년 국제 환경이 지금보다 호전되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북한의 완고한 입장이나 미국의 복잡한 국내 사정 등을 고려하면 북·미 실무회담이 연내에 개최되기는 힘들어졌다. 애초부터 미 대선을 고려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타협을 할 것이라는 가정에는 무리가 있었다. 미국 유권자의 투표 행태를 보더라도 대외정책 변수의 영향은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은 북핵 협상에서 시간은 미국편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를 지속하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외교 우선순위도 중동이나 라틴아메리카보다 북한 비핵화가 높지 않은 상황이라 굳이 연초까지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트럼프는 구태여 ‘나쁜 합의’를 하여 국내 정치적으로 비난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트럼프를 탄핵하고자 하는 지금의 정국에서는 북한과 제대로 된 합의를 해야 국내 정치적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독재자와 교섭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초조한 입장에서 연일 ‘새로운 길’을 언급하고 있다. 북한은 ‘벼랑끝 전술’이 일정한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연말까지’라는 발언이 단순히 엄포가 아니라는 것을 보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연내 2차 북·미 실무회담조차 열리지 못할 경우 북한은 단계적으로 군사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은 미사일에서 인공위성 발사까지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새로운 길’을 추진하더라도 사실상의 레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리적이라면 레드라인을 넘고 난 이후 사용할 수단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또한 지금까지 우호적이었던 중국, 러시아와 등을 지면서 국제 고립을 자초하는 위험 부담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 행태는 김정은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자제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레드라인을 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게다가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김정은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년에도 북·미 관계는 비핵화 교섭이 진전되지 않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중지하고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한국에는 한·미 군사훈련과 첨단 무기 도입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미국도 북한에 대해 대북 제재의 범위, 강도를 높이는 방안과 군사적 옵션을 다시 부각시키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란, 터키 문제를 고려해볼 때 미국의 대북 군사적 옵션 가능성은 2017년보다 그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를 이용해 점차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앞으로 김정은의 명분 축적을 위해 한·미동맹이 타협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리고 중국도 이 틈새를 이용해 한·미동맹을 이간질하면서 한국을 곤경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일 관계는 징용공 문제로 더욱 더 악화되면서 위기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이럴 때 문재인정부는 북한과의 성과를 내기 위한 강박관념에 빠져서는 안 된다.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해 한·미 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영구 중단을 카드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남북 관계 일변도 정책을 개선할 때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플랜B를 모색하면서 국제관계와 함께하는 긴 호흡을 생각해야 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