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의경] 그녀가 잠든 사이

입력 2019-12-09 04:07

매주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같은 카페에 나가다 보니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다. 앳되어 보이는 아이 엄마인데 그녀는 주말마다 네다섯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카페에 온다. 엄마는 책을 봤고 아이는 스마트폰이나 동화책을 들여다봤다. 서로 말을 거의 나누지 않고 두세 시간 앉아 있는 그들을 나는 눈여겨보았다. 엄마는 그렇다 치고 어린 아이가 한자리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녀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금세 알 수 있었다. 아이와 엄마는 종종 한국어 교재를 펼쳐놓고 카페에서 함께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엄마보다 오히려 한국어를 잘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엄마가 화장실에라도 가면 스스럼없이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어제는 웬일로 아이 엄마가 테이블에 엎드려 오래도록 잠을 잤다. 간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30분이 흘렀는데도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휴대폰 진동이 몇 번이나 울렸지만 그녀는 단잠을 잤다. 그동안 아이는 온 카페를 휘젓고 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는 사교성이 뛰어났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과자를 얻어먹고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말했다. 엄마와 나란히 앉은 또래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여자아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함께 갖고 놀았다. 그 아이는 내게도 와서 말을 걸었다. 아이의 행동과 말투가 사랑스러워서 나도 아이가 하는 말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아이는 무려 일곱 개의 테이블을 돌며 놀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는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가 뒤척이는 것을 보고 아이는 잽싸게 달려와 다시 엄마 앞에 앉더니 책을 들여다보는 시늉을 했다. 잠시 후 엄마가 고개를 들며 눈을 비볐다. 엄마가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얼마나 잤어? 두 시간이나 지났잖아. 왜 안 깨웠어?” 엄마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머리를 다시 묶은 다음 아이 손을 잡고 카페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이는 뒤를 돌아 카페 안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카페 안의 사람들도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김의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