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는 과거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소속으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으로부터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를 최초 접수한 문모 전 행정관을 5일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문 전 행정관을 상대로 송 부시장으로부터 김 전 시장 비위 관련 제보를 받은 경위, 이후 제보의 가공 정도를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한동안 “첩보는 그대로 이첩됐다”는 입장이었지만, 지난 4일 “행정관이 제보 내용을 요약하고 일부 편집해 문건을 정리했다”고 말을 바꾼 상황이다.
검찰은 송 부시장에게서 출발한 제보가 문 전 행정관의 ‘요약과 편집’ 과정을 거쳐 범죄첩보로 발전한 만큼 엄연히 청와대의 생산 문건이 경찰청에 하달된 것이라고 본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첩보는 단순히 제보자가 쓴 진정서 정도의 가치만 가지는 게 아니라 청와대 명의의 문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내용을 건드리지 않고 형식만 가공했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청와대의 개입이라는 해석이다. 이 관계자는 “내용이 똑같다는 점보다 오히려 명의가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설명했다.
형식뿐 아니라 내용의 변화도 배제할 수 없다. 법조계는 문 전 행정관이 검찰에서 범죄정보 수집 일을 한 이력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유능한 범죄정보 인력은 ‘취재’뿐 아니라 ‘법률 적용’과 ‘집필’이 뛰어나다는 평가 때문이다.
송 부시장에게서 넘겨받은 김 전 시장 관련 비위가 단순히 요약 편집된 게 아니라 법률적 판단까지 뒷받침됐다면 이를 단순 제보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관측이다. 문 전 행정관과 함께 법정 업무를 담당했던 한 법조계 인사는 “적중률이 30~40%에 달할 정도로 일을 엄청나게 잘했다”고 기억했다.
법조계는 이 같은 문 전 행정관의 가공 정도가 곧 청와대가 한사코 부인하는 ‘하명성’을 판가름할 핵심 근거로 이어진다고 본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첩보의 가공은 직권남용 여지가 된다”며 “청와대 행정관이 제보를 요약하고 편집했다는 것은 그런 부분에서 하명 성격을 짙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만일 가공 이후 생산된 문건에 법리적 해석까지 곁들여져 있다면 문제가 커진다”고 말했다.
첩보의 원천을 계속 수사 중인 검찰은 첩보 생성 과정에 있어 송 부시장과 청와대 측의 말이 엇갈리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당사자들 간 주장 내용이 약간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송 부시장이 먼저 문 전 행정관에게 김 전 시장 관련 비위를 보내준 것인지, 문 전 행정관이 먼저 송 부시장에게 요구를 한 것인지 아직 불분명하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정부 부처 공무원의 제보’라 했지만, 송 부시장은 “문 전 행정관이 울산 지역의 특이 동향을 물어 왔다”고 다수 언론에 밝혔다. 검찰 수사 결과 송 부시장 쪽 주장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의 선거 개입 정황은 좀 더 선명해진다. 또다른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청와대 측에서 동향을 물어봤다는 것은 이미 청와대가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라며 “선거를 앞둔 시기에 ‘울산의 동향’을 묻는다면 뻔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하명 수사 의혹은 더욱 커졌다. 청와대가 받아 경찰청으로 하달하고 향후 울산경찰청의 김 전 시장 수사 근거가 된 자료가 송 부시장에서 나왔다는 사실 자체 때문이다. 송 부시장은 2017년 8월부터 9월 사이에 송철호 울산시장 후보의 선거캠프 준비모임에 합류한 인사다.
그는 문 전 행정관에게 김 전 시장 비위를 제보한 뒤인 지난해 1월 송 시장과 함께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만나 공공병원 관련 대선 공약을 청취했다. 송 시장은 울산 공공병원 건립을 지방선거 당시 중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향후 검찰 수사의 핵심은 첩보 가공 과정에서의 청와대 ‘윗선’ 개입 여부다.
박상은 김용현 구승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