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울산시장 비위 첩보 제보자가 상대 후보 측근이라니

입력 2019-12-06 04:01
선거판 음해성 주장을 靑이 첩보로 공식화한 건 월권 가능성 높아…
이첩받은 경찰은 下命으로 인식했을 듯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출발점이 된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관련 비위 첩보가 청와대 행정관에 의해 생산됐다는 청와대 발표는 충격적이다. 더구나 첩보의 제공자가 김 시장과 선거에서 맞붙었던 여권 후보의 측근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국민들을 아연케 하고 있다. 청와대 등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 파견 근무하던 행정관이 2017년 10월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김 시장 주변 의혹과 관련한 제보를 받고 이를 요약해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에게 보고했다. 제보자는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선거를 위해 활동 중이던 송병기 현 울산시 경제부시장이었다.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지게 마련인 선거 관련자의 제보를 청와대 행정관이 매만져 공식 라인으로 보고한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행정관은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도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라니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선출직 공무원과 관련한 감찰 권한이 없는 민정비서관실에서 첩보를 생산한 것은 월권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 행정관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고교 동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의혹을 더 부채질 하고 있다.

문제성 있는 첩보를 백 민정비서관이 반부패비서관실로 넘기고, 다시 경찰청 특수수사과를 거쳐 12월 울산지방경찰청에까지 전달된 과정도 문제가 없지 않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나온 음해 성격이 농후한 첩보라면 자체 폐기가 유력한 처리 방안이었을 것이다. 청와대는 권한 밖 사안이라 단순 이첩했다지만 이를 경찰에 공식적으로 이첩한 순간 경찰은 하명으로 인식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경찰이 이후 청와대에 10차례 보고를 한 것을 보면 하명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관련자들이 이런 정황을 몰랐다면 무지하거나 무감각한 것이고, 알았다면 하명 수사를 유도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기 십상이다. 검찰이 5일 해당 행정관을 소환조사했다고 하니 앞으로 이런 의혹들이 낱낱이 규명돼야 할 것이다.

청와대가 이번 사안을 발표하면서 제보자에 대해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닌 공직자”라고 설명했다가 뒤늦게 송 부시장으로 밝혀진 것을 두고도 비판이 일고 있다. 실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꼬리 자르기 식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또 행정관이 제보를 받아 첩보를 정리했다는 발표와 달리 제보자는 “청와대의 요구가 있어 응한 것”이라고 다른 해명을 내놨다. 지금 청와대는 한가한 입장이 아니다. 철저한 문제의식을 갖고 엄중한 조사를 해 가감 없는 진실을 국민 앞에 내놓아도 부족할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