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내치려다 역풍맞은 황교안… 의원들 “배신 행위” 반발

입력 2019-12-05 04:06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자신의 임기 연장을 불허한 최고위원회의 결정에 승복한다는 뜻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나경원 원내대표의 임기 연장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을 두고 당내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원내대표 연임 여부를 정하는 것은 의원들의 고유 권한인데 당대표가 이를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나 원내대표가 일단 연임 의지를 거둬 논란이 일단락되는 모양새지만, 황 대표의 제왕적 당 운영에 대한 우려가 수면 위로 표출돼 뒤가 개운치 않게 됐다.

나 원내대표는 4일 의원총회에서 자신의 연임 여부를 묻지 않겠다고 말했다. 본래 이날 의원총회는 나 원내대표 본인의 재신임 여부를 묻기 위한 자리였다. 전날 황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연임 거부를 결정하자 의사를 접은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나경원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춘다”면서도 “권한과 절차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원내대표 거취를 당 지도부가 좌지우지한 셈이 되자 당내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의원총회에 참석한 김태흠 의원은 공개발언에서 “원내대표 연임 문제는 당대표와 최고위원들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문재인 정권의 독재를 비판할 수 있겠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김세연 의원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당 지배구조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라고 했다. 이날 청와대 앞 농성장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한 정진석 의원도 “20년 정치를 하며 이런 일은 처음 본다”고 항의했다.

당헌·당규에는 원내대표 임기 연장이 최고위원회의 의결 사항이라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 다만 당대표에게 원내대표 선거 일자를 공고할 수 있는 권한은 있다. 지도부는 이 권한을 근거로 원내대표 연임에 최고위의 사전적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선거일을 각자에게 유리하게 정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절차상의 권한에 불과하다는 것이 다수 의원의 판단이다. 이에 따르면 지도부는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라고 주어진 권한을 확대 해석해 결과적으로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한 셈이 된다. 의원들은 원내대표 거취와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당대표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선례가 만들어질 경우 당내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 우려한다.

황 대표가 측근들을 주요 보직에 기용해 ‘친황체제’를 강화한 것과 맞물리면서 의원들의 반발 수위도 덩달아 높아졌다. 김용태 의원은 페이스북에 “황 대표가 단식하는 동안 무슨 구상을 했는지 분명해졌다. 친정체제를 구축해 당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라며 “이건 국민과 당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일갈했다.

황심을 얻은 후보가 유리할 것으로 보였던 차기 원내대표 선거전도 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 황 대표를 견제하는 의원들의 심리가 작용해 반황계 후보로 표심이 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중진 의원은 “황 대표의 측근이란 꼬리표가 이번 선거에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3선의 강석호, 4선의 유기준, 5선의 심재철 의원이 출마 선언을 했거나 할 계획인 가운데 윤상현 의원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4일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한국당 3선 김영우 의원. 최종학 선임기자

한국당에서는 이날 3선의 김영우 의원이 추가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나라가 총체적으로 무너지는 이때 우리 내부에서 혁신을 바라는 목소리가 제지당하거나 막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