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르렁댄 트럼프·마크롱… ‘나토 뇌사’ 발언·터키 놓고 격돌

입력 2019-12-05 04:07
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도중 트럼프 대통령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발언하고 있다. 두 사람은 나토의 방위비 분담과 이슬람국가(IS) 격퇴전 및 터키의 시리아 침공 등 현안에 대해 사사건건 대립하며 기싸움을 벌였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출범 70주년을 맞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면 충돌했다. 상대 국가를 국빈방문하고 에펠탑에서 식사를 함께하며 끈끈한 브로맨스를 과시했던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날선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두 스트롱맨의 충돌은 한 달 전 마크롱 대통령이 “나토는 뇌사 상태”라고 발언하면서 촉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회원국들에 방위비를 제대로 분담하지 않는다는 식의 고압적 태도를 보이며 동맹을 상업적 거래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해당 발언에 대해 “매우 모욕적이고 28개 나라에 아주아주 못된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28개국은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나토 회원국을 뜻한다. 그는 “프랑스보다 더 나토를 필요로 하는 국가는 없다”며 “미군이 군사비 지출 공동 목표를 이행하지 않는 동맹국을 방어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내 발언이 여러분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며 “(뇌사 상태라는) 그 발언을 물리지 않겠다”고 맞섰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를 인용해 ‘뇌사 상태’ 발언은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지적이라고 전했다. 나토를 이끌어온 미국에 대한 불신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떠나려 하고 독일도 사회민주당(SPD) 이탈로 대연정이 와해되는 등 정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에서의 영향력 확대 기회를 노려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체납 논리까지 펼쳐가며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 증가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기존에 합의된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지출은 턱없이 부족하며 4%까지는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토 회원국은 국방예산을 2024년까지 각국 GDP 대비 2% 수준으로 올리자고 합의했지만 올해 이 기준을 충족한 국가는 9개국뿐이다. 20개국이 아직 2% 분담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반발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 정상은 터키 문제를 두고도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의 공동 적은 테러단체들인데 나는 우리가 테러리즘에 대해 똑같은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게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서 서방 동맹국들과 함께 싸운 쿠르드족 민병대를 터키가 공격하도록 묵인한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이에 대한 대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멋진 IS 전투원을 데려가겠나. 원하는 사람들은 다 데려가도 된다”고 말했다. 유럽 출신 IS 포로들을 유럽 국가들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불만을 드러냈던 트럼프 대통령이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불평만 하고 있다는 식의 뼈있는 농담을 던진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정색하며 “진지하게 하자”며 “유럽 출신 IS 전투원은 극소수이며, 테러조직을 제거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반박했다.

NYT는 두 정상의 회동 장면에 대해 “브로맨스는 끝났다”고 평가했다. 냉전시기 소련 등 공산권의 부상을 막기 위해 창설된 서구 최대 군사동맹체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존폐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