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 말씀이 없다. 약속했다가 취소하긴 그래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 전문공보관이 지난 3일 기자들과의 첫 만남에서 했던 말이다. 전날 동부지검에서 열린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유재수 사건 공개 여부 논의에 대해 기자들이 설명을 요구하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심의위는 전날 이 사건 공개 범위를 결정했지만 그 결정도 비공개하기로 했었다. 전문공보관은 이날도 “잘 모르겠다” “드릴 말씀이 없다” “알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수사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공보가 필요 없다고 할 수 있고, 중요 사항이 있어 공보를 해야 한다고 할 수 있고”라는 말도 했다.
검찰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계기로 추진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법무부 훈령)’이 지난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형사사건 공개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이 훈령은 공익 목적, 언론 요청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심의위를 열어 공개 수준을 논의토록 했다. 대부분은 사건 공개 자체가 금지된다. 유재수 사건은 1호 심의위 개최 케이스다. 청와대의 전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도 심의위 개최를 검토 중이다. 결론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훈령에 따라 전국 66개 검찰청엔 전문공보관 16명, 공보담당자 64명이 배치됐다. 수사 과정 속 인권 침해 요소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훈령 전에도 피의사실 공표 금지, 피의자 공개소환 금지, 장시간 조사 금지 등은 이미 시행됐다. 정경심 교수 등 조 전 장관 가족이 이런 조치를 적용받은 사실상 첫 케이스였다. 청와대, 여당이 조 전 장관 수사 와중에 ‘검찰 개혁’ ‘인권 보호’ 목소리를 높이며 압박한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의 “철저 수사” 지시 며칠 뒤 법무부가 밤늦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긴급출국금지 조치 사실을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내는 초유의 일이 있었던 게 불과 몇 개월 전인데, 변해도 많이 변했다.
어찌됐든 언론은 이제 수사 상황을 ‘알 수 없는’ 전문공보관 접촉만 가능해졌다. 기자들이 검사에게 전화하면 “공보 담당자에게 문의하기 바란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오보를 막을 수도,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길도 막혀버린 것이다.
국민은 이제 범죄를 저지른 공직자, 주요 기업인이 재판에 넘겨지는 단계에서야 그 사실을 알 수밖에 없다. 훈령은 기소 이후에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에만 공개하도록 해 이것도 장담할 순 없다. 검찰이 수사 상황을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만 공개할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이 피의자를 ‘봐줘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검찰 내부 취재는 원천 봉쇄됐기 때문에 밀실수사, 깜깜이 수사로 갈 수밖에 없다. 수사 과정을 흘려서 인권이 침해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수사에 대한 외부, 특히 언론의 감시와 견제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깜깜이 수사가 현실화한 지금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겨냥한 검찰의 두 갈래 수사가 한창이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이든,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이든 청와대와 여당의 검찰 탓, 언론 탓은 조국 수사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혹여 국민적 관심을 돌리려는 의중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청와대는 배경도 수상하고, 우연들이 겹치는데도 유재수 의혹엔 “프라이버시”(2018년 12월 31일 조국 민정수석), “정무적 판단”(11월 29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 한다. 하명 수사 의혹에 대해선 “고래고기 때문”(11월 29일 노영민 비서실장, 12월 2일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라고 한다.
언론에 검찰이라는 중요한 취재경로가 차단된 것은 이제 현실이 됐다. 하지만 기자들이 단 하나의 단서, 사람을 찾고 큰 줄기로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뛰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작가 해리 골든은 “쇼는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사실 확인을 위한 기자들의 취재 역시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남혁상 사회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