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통신업체 퀄컴이 휴대전화 제조업체 등에 부당한 계약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1조원대의 과징금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퀄컴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고 불공정 거래 행위를 한 점이 상당 부분 인정된다고 보고 사실상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노태악 이정환 진상훈)는 4일 퀄컴 인코포레이티드, 퀄컴 테크놀로지 인코포레이티드, 퀄컴 CDMA 테크놀로지 아시아퍼시픽 PTE LTD 등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에서 이처럼 판결했다.
미국에 있는 퀄컴의 본사 퀄컴 인코포레이티드는 특허권 사업을, 나머지 2개사는 이동통신용 모뎀칩세트 사업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앞서 2016년 이들 3개 회사에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 1조311억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퀄컴이 모뎀칩세트 공급과 특허권을 연계해 기업들에 이른바 ‘갑질’을 하고, 특허권을 독식했다고 판단했다.
퀄컴은 휴대전화 생산에 필수적인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SEP)를 보유했다. 공정위는 삼성·인텔 등 칩세트사가 계약 체결을 요구하면 이를 거부하거나 판매처를 제한하는 등 실질적인 특허권 사용을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또 퀄컴이 휴대전화 제조사와의 특허권 계약도 일방적인 조건으로 체결했다고 공정위는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우선 퀄컴이 특허와 칩세트 상품에 있어 세계시장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에 있었고 휴대전화 제조사들에는 거래상 우위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 비춰 칩세트사에 타당성 없는 조건을 제시하고,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등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거래상 우위를 남용해 휴대전화 제조사에 불이익한 거래를 강제하고,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한 점도 인정된다”며 이에 대한 공정위의 시정명령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휴대전화 제조사에 끼워팔기식 계약을 요구하거나 실시료 등을 받은 부분은 불이익한 거래를 강제하거나 경쟁을 제한한 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총 10개의 공정위 시정명령 가운데 2개 명령은 위법하고, 나머지는 적법하다고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적법하다고 인정된 시정명령만으로도 휴대전화 제조사들에 부당한 계약을 강요할 수 없게 되므로, 일부 시정명령이 취소되더라도 시장 질서를 회복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3년 가까이 심리한 끝에 이날 첫 판단을 내놓았다. 공정거래 사건은 서울고법이 1심 재판을 맡고, 대법원이 2심 재판을 맡는 2심제로 진행된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