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휘발유값 50%(ℓ당 약 50원) 인상으로 촉발된 이란 반정부 시위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40년 만에 최악의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이란 당국의 무력진압으로 현재까지 최소 208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2일(현지시간) “신뢰할 수 있는 보고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반정부 시위로 인한 사망자 수가 최소 208명으로 늘어났다”며 “실제 사망자 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앰네스티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사망자 수가 115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주일여 만에 사망자가 100명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유가 인상에서 촉발됐지만 시위대의 분노는 최고지도자와 정권 핵심부를 향하고 있다. 현 이란 체제는 40여년 전 세속주의 친미(親美) 왕조가 무너진 뒤 들어선 반미(反美) 이슬람 공화국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기반한 신정일치 국가로 이슬람 최고지도자가 절대적 권한을 갖는 독재체제다. BBC는 시위 현장에서 “최고지도자는 신처럼 사는데 우리는 거지처럼 산다” 등 반체제 구호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체결했던 핵합의를 지난해 파기한 뒤 재개한 대(對)이란 경제제재 탓에 가중된 민생난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이슬람 체제 수호를 임무로 삼는 이란혁명수비대(IRCG)가 앞장서 시위를 무력진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의 군 조직은 정규군과 혁명수비대로 이뤄진다. 이슬람혁명 전 팔레비 왕조의 군사조직을 계승한 정규군 외에 혁명수비대라는 최정예 부대를 따로 둬 체제 수호를 맡긴 것이다. 혁명수비대가 AK-47 소총 등으로 100여명을 사살하는 현장을 봤다는 목격담도 나온다. 이 같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이란 당국이 시위 발발 직후 약 열흘간 인터넷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란 국영TV도 이날 당국의 발포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보도를 내놓았다. 국영TV는 앰네스티 추정 사망자 수는 부정하면서도 “폭도들이 군사시설 등 민감한 시설을 공격해 군이 여러 도시에서 폭도들을 사살했다”고 전했다. 당국의 발포로 시위대가 사망했음을 시인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반정부 시위에 대해 “이란 지도자들에 대해 좌절한 민심의 폭발”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내정에 개입하고 있다고 분노하는 이웃 국가들의 시위까지 겹치면서 이란 지도자들이 심각한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