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무더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신청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놓고 연말 정국이 양당 간 양보 없는 ‘치킨게임’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내년도 예산안은 법정 시한(12월 2일)을 넘겨 지각 처리될 상황이고, 산적한 각종 민생 법안 처리에도 제동이 걸렸다. 집권당과 제1야당이 ‘협상의 묘’를 살리기는커녕 국민을 볼모 삼아 대결 정치만 거듭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1일에도 국회 파행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데 급급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당 때문에 공존과 협상의 정치가 종언을 고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생을 볼모로 국회를 원천봉쇄하려 했던 상대와 더 이상 협상하고 합의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무리”라며 “민생 개혁을 원하는 정치세력과 이 사태를 정리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맞불 기자간담회에서 “불법 여당의 수준이 극악무도로 치닫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소수 야당에 보장된 무제한 토론권을 달라고 호소했지만, 국회 봉쇄라는 수단으로 짓밟았다”며 “헌법이 보장한 야당의 권리로 반드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일 ‘민생 법안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고 민식이법 등 어린이교통안전법, 유치원 3법, 데이터 3법 등 민생 개혁 법안을 우선 처리하자”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서는 “1주일간 끝장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 제안에 “못 받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지난 29일) 필리버스터를 신청해놨기 때문에 그 정신이 지켜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며 야당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이해찬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한국당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협상도 없다는 강경 기조를 재확인했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회의 후 브리핑에서 “2~3일간 한국당을 포함해 야당과 의견을 나눌 것”이라며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고 정상적인 의사진행에 조건 없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공조체제로 의사진행 및 안건 처리에 나설 방침”이라고 경고했다.
2일과 3일에는 각각 예산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 검찰 개혁 법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뺀 나머지 야당과 협조해 예산안 심사를 마무리하고, 오는 10일 끝나는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에 주력할 방침이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때문에 정기국회 내 법안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여당에선 정기국회 회기 종료 후 문희상 국회의장의 재량권에 기대 임시국회를 열고, 선거법 등 쟁점 법안을 하나씩 처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가현 김용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