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지난 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안건 199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했다. 필리버스터는 의원들이 안건에 대해 시간제한 없이 발언하는 것으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뜻한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가 예상될 때 소수당(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이 이를 막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 필리버스터는 제헌국회 당시 만들어졌다가 1973년 폐지됐고,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질 때 다시 도입됐다.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제도임에도 필리버스터는 지금까지 총 4건의 사례 중 단 1건만 성공했다. 필리버스터가 무조건적인 법안 처리 저지를 담보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상황에 맞게 사용하지 않을 시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가 있었다. 2월 23일부터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의원 38명이 본회의장 연단에 올라 “법이 통과되면 국가정보원의 무분별한 감청 및 금융정보 수집이 가능해진다”며 총 192시간27분(8일27분) 동안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당시 임시회 회기 종료일인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가지는 않았다. 국회법(제106조의 2)은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중에 해당 회기가 끝날 때는 무제한 토론의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다음 회기에서 바로 표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당시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행사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임시회를 소집할 경우 바로 테러방지법을 표결에 부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새누리당은 실제 필리버스터가 종료되자 테러방지법을 곧바로 통과시켰다.
이번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 때와는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민주당이 테러방지법 1건에 대해 필리버스터 신청을 했기에 물리적으로 테러방지법 표결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한국당은 본회의에 오른 안건 199건 전부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한국당 방침대로 의원 1인당 4시간씩의 연설을 배정하면, 100여명이 199건에 대해 약 8만 시간(3330일)을 발언할 수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필리버스터를 막으려면 종결 동의안(재적의원 5분의 3 찬성)을 통과시키면 되는데, 199개 안건마다 24시간 뒤에 표결을 할 수 있어 종결 동의안 통과에도 약 200일이 걸린다.
필리버스터가 성공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다. 1964년 의원 신분이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당시 공화당이 요청한 야당 의원 체포동의안을 막기 위해 5시간19분간 발언했고, 결국 체포동의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