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역대 4건 중 1건 성공… 자칫하다 여론 역풍 ‘위험한 도박’

입력 2019-12-01 18:51
지난달 29일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 기습 선언으로 패스트트랙 법안과 예산안 등의 일괄 처리가 어려워졌다. 패스트트랙 법안 중 검찰개혁 법안이 이틀 뒤 본회의에 부의되는 1일 국회 본관 의안과 복도에 많은 서류들이 산적해 있다. 김지훈 기자

자유한국당이 지난 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안건 199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했다. 필리버스터는 의원들이 안건에 대해 시간제한 없이 발언하는 것으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뜻한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가 예상될 때 소수당(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이 이를 막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 필리버스터는 제헌국회 당시 만들어졌다가 1973년 폐지됐고,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질 때 다시 도입됐다.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제도임에도 필리버스터는 지금까지 총 4건의 사례 중 단 1건만 성공했다. 필리버스터가 무조건적인 법안 처리 저지를 담보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상황에 맞게 사용하지 않을 시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가 있었다. 2월 23일부터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의원 38명이 본회의장 연단에 올라 “법이 통과되면 국가정보원의 무분별한 감청 및 금융정보 수집이 가능해진다”며 총 192시간27분(8일27분) 동안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당시 임시회 회기 종료일인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가지는 않았다. 국회법(제106조의 2)은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중에 해당 회기가 끝날 때는 무제한 토론의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다음 회기에서 바로 표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당시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행사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임시회를 소집할 경우 바로 테러방지법을 표결에 부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새누리당은 실제 필리버스터가 종료되자 테러방지법을 곧바로 통과시켰다.

이번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 때와는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민주당이 테러방지법 1건에 대해 필리버스터 신청을 했기에 물리적으로 테러방지법 표결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한국당은 본회의에 오른 안건 199건 전부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한국당 방침대로 의원 1인당 4시간씩의 연설을 배정하면, 100여명이 199건에 대해 약 8만 시간(3330일)을 발언할 수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필리버스터를 막으려면 종결 동의안(재적의원 5분의 3 찬성)을 통과시키면 되는데, 199개 안건마다 24시간 뒤에 표결을 할 수 있어 종결 동의안 통과에도 약 200일이 걸린다.

필리버스터가 성공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다. 1964년 의원 신분이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당시 공화당이 요청한 야당 의원 체포동의안을 막기 위해 5시간19분간 발언했고, 결국 체포동의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