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인권’ 유럽서도 이슈화… 中-EU 경제적 유대 흔들다

입력 2019-12-02 04:05
홍콩 시위대가 지난 29일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서 전직 총영사관 직원이었던 사이먼 쳉의 얼굴을 묘사한 마스크를 쓴 채 집회를 열고 있다. 사이먼 쳉은 중국 비밀경찰로부터 시위 주도자 등의 정보를 실토하라며 폭행과 인권 침해를 당했다고 폭로한 인물로 시위대는 영국 정부에 홍콩 시민들을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시위와 신장위구르 지역의 소수민족 탄압 등 인권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그동안 차세대 이통통신(5G) 등 기술안보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자는 미국의 요구에 미온적이었으나 인권 문제가 불거지자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중국에 저자세를 보이던 유럽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양측의 경제적 유대관계에도 균열이 발생할지 주목된다.

친중 성향에 가장 가까운 유럽연합(EU) 국가 중 하나인 이탈리아가 중국과 외교적 충돌을 빚고 있다고 ANSA통신이 전했다. 충돌의 원인은 이탈리아 상원이 지난 28일(현지시간) 개최한 홍콩 야권지도자 조슈아 웡(22)과의 화상 콘퍼런스 때문이다.

조슈아 웡은 극우 정당들 주도로 마련된 화상 콘퍼런스에서 홍콩 시위와 관련, “일부 이탈리아 업체들이 시위대 진압 장비 등을 제공하고 있다”며 시위 진압 물품 수출 금지를 촉구했다. 그는 또 “공짜 점심은 없다”며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이탈리아는 자국 항구를 중국에 개방하는 등 ‘선진 7개국’(G7) 가운데 처음으로 일대일로에 동참한 국가다.

화상 콘퍼런스에 대해 이탈리아 주재 중국대사관이 트위터를 통해 “이탈리아 정치인들이 조슈아 웡과 화상 대화를 한 것은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난하자 이탈리아 외무부는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했다. 이탈리아 외무부는 “이탈리아 의회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비판했고, 정치권에서도 “이탈리아 정치인들을 무책임하다고 비난한 중국의 오만함과 뻔뻔스러움이 놀라울 따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의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배제’ 요구를 애써 무시해오던 독일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27일 EU 회원국들에 “중국 문제에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 국가들이 자신들만의 대중 정책을 갖고 (중국에) 완전히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개별적인 대응은 중국이 아니라 유럽에 있는 우리에게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5G 네트워크 개발과 관련한 안보 기준에 대한 EU 차원의 해법 마련을 제안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범민주 진영이 압승한 홍콩 구의원 선거에 대해 “홍콩인들이 그들의 입장을 표현했고, 선거가 매우 평화적으로 진행된 건 좋은 신호”라고 밝혔다.

영국과의 갈등도 불거졌다. 영국 법원이 지난해 보수당 주최 홍콩 관련 토론회에서 행사 관계자의 뺨을 때린 중국 CCTV 특파원 쿵린린(49)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자 중국이 반발한 것이다. 영국 버밍엄시 치안 판사는 29일 쿵린린에게 12개월 조건부 방면과 벌금 2115파운드의 벌금을 선고했는데 영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영국 법원의 판결에 충격과 분노를 표시한다”면서 “이 판결은 영국의 사법적 신뢰성에 의문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앞서 영국 외무부와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신장위구르 소수민족 탄압과 관련, “재교육수용소에 대한 유엔의 제한받지 않는 접근을 즉각 보장하라”고 중국 정부에 요구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최근 신장위구르 재교육수용소가 소수민족을 탄합하고 세뇌하기 위해 설립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국 공산당 문건을 폭로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