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권기석] 유치원 3법이 통과돼야 하는 이유

입력 2019-12-02 04:03

서울에는 중학교가 386곳 있는데 294곳이 남녀공학이다. 그중 8곳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2배 이상인 여초(女超) 학교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강중은 올해 4월 1일 기준으로 여학생 285명, 남학생 67명으로 여학생이 남학생의 4.3배다. 송파구 오륜중도 420명 대 103명으로 여학생이 4.1배다.

여초 학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학생이 더 많은 남초 학교도 있다. 중랑구 봉화중은 남학생 260명, 여학생 73명으로 남학생이 여학생의 3.6배다. 서초구 신반포중도 544명 대 179명으로 남학생이 3배다. 남학생이 2배 이상인 중학교는 15곳이다. 성비 불균형이 무슨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교사들은 학생 지도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한다. 학생들도 상대 성(性)의 기세에 눌려 학교생활이 편하지 않다. 모든 학급을 남녀 합반으로 구성하지 못하고 단성반과 혼성반을 섞어 운영하는 학교도 있다.

이들 학교의 여초, 남초 현상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여초, 남초 학교는 인근에 단성(單性) 학교가 있다. 여초 학교 주변에는 남학생만 다니는 중학교가 있고 남초 학교 주변에는 여학생만 다니는 학교가 있다. 단성 학교에 학생을 채우고 난 뒤 남녀공학에 학생을 배정하다보니 여초, 남초 현상이 생겼다.

주목할 점은 대부분 여초, 남초 학교는 공립이고 주변 단성 학교는 사립이라는 사실이다. 공립학교는 교육청 방침에 따라 남녀공학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사립학교는 고유의 전통과 동문의 반대를 내세워 단성을 고수한다. 여초, 남초 현상은 사립학교가 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서울 중학교의 성비 불균형 문제는 사립학교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의 매우 작은 부분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립학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오랫동안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어 비리와 부정이 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단적인 예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허위 소송과 교사 채용 비리 혐의다. 동생 조모씨는 가족이 운영하는 사립학교 재단인 웅동학원을 상대로 공사비 채무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재단이 소송 대응을 포기함으로써 그는 100억원이 넘는 채권을 확보했다. 가족의 학교 재단을 이용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돈을 번 것이다.

생각해보면 조 전 장관 가족의 범죄 혐의는 그가 장관 후보자여서 드러났다.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물러나 서울대 교수로 복귀했다면 비리는 조용히 묻히고 지나갔을 것이다. 이는 다른 사립학교에서 비슷한 부정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으며 대부분 발견되지 않고 지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건국 이후 역대 정부는 사립학교와의 기싸움에서 줄곧 밀렸다. 교육 인프라가 척박했던 개발 시대 ‘사재를 털었다’는 설립자 앞에서 정부는 ‘을’일 수밖에 없었다. ‘사립’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교사 인건비를 지원하고 여러 세제 혜택을 주면서도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폭넓게 인정해줬다. 학생 6000명 이상인 대학 중 지금까지 종합감사를 한 차례도 받지 않은 곳이 16곳이라니 사립이 누려온 혜택은 놀라울 정도다.

누적된 자율성의 결과는 참혹하다. 사립학교를 감사하면 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나온다. 최근에는 유치원 돈을 제 맘대로 펑펑 쓴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우리를 분노케 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이 정도이니 중·고교나 대학에선 부정이 상상 그 이상일 수 있다.

‘유치원 3법’이 통과돼야 하는 이유는 유치원의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그 자체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이 일이 사립학교 개혁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어서다. 사학 개혁은 유치원에 이어 중·고교, 대학에까지 계속 추진돼야 한다. 최근 사립유치원의 저항에서 보듯 이는 아주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현 정부 임기 내 모든 사학 비리를 척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장기 계획을 세워 사학의 부정에 대처해야 한다.

권기석 온라인뉴스부 차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