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사는 강모(35·여)씨는 지난달 우리은행에서 ‘핑크퐁과 아기상어 아기 적금 통장’을 개설했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서다. 강씨는 “저축 많이 하면 다른 통장도 만들어준다고 했더니 아이가 용돈을 아껴 쓴다”며 웃었다. ‘핑크퐁과 아기상어 통장’은 지난 27일 기준으로 출시 5개월 만에 약 6만9000계좌나 팔렸다.
금융권에서 ‘캐릭터 비즈니스’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캐릭터 디자인을 넣어 고객의 구매욕구와 감성을 함께 자극하는 상품이다. 캐릭터 비즈니스는 ‘미래 고객’에 초점을 맞춘다. 금융회사가 아닌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여기에 스토리(상품 정보)를 입혀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것이다. 처음 거래를 튼 금융회사를 주거래 금융회사로 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첫 은행·카드’ 자리를 선점하려는 의도다.
NH농협카드는 28일 ‘라이언 치즈 체크카드’를 출시했다. 카카오프렌즈 ‘라이언’을 카드 디자인에 적용했다. BC카드는 애니메이션 채널인 카툰네트워크의 ‘위 베어 베어스’(곰 캐릭터)가 그려진 체크카드를 판매 중이다.
신한카드가 판매 중인 ‘마이펫의 이중생활’ 카드는 반려동물 전용 쇼핑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도 제공한다. KB국민카드는 캐릭터 오버액션 토끼가 들어간 ‘오버액션 노리 체크카드’를 선보였다. SC제일은행은 월트디즈니의 ‘겨울왕국2 체크카드·통장’ 출시를 기념해 최근 고객 850명을 데리고 영화 ‘겨울왕국2’를 단체 관람했다. 캐릭터 홍보를 금융상품 구매로 연결하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왜 캐릭터를 앞세울까. ‘소확행’(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젊은 고객층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어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금융회사가 기존의 무거운 이미지를 버리기 위해서 인기 캐릭터 ‘입’을 빌려 상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며 “젊은 고객에게 상당한 마케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고객’은 은행의 ‘미래 고객’으로 발전한다. 통상 처음 통장을 개설하거나 카드를 만든 곳은 주거래 금융회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기익 신한카드 체크영업팀장은 “저금리나 오픈뱅킹 도입으로 차별화가 힘든 상황에서 주거래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해졌다. 젊은 고객을 평생 고객으로 만드는 데 캐릭터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캐릭터 비즈니스’의 파괴력은 상당하다. 신한카드가 지난 3월 출시한 미니언즈 카드는 현재 50만장 판매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재영 신한카드 공보팀장은 프로모션을 최소화해도 캐릭터 카드는 2~3배가량 판매 속도가 빠르다고 밝혔다.
캐릭터 흥행이 간접적으로 금융상품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통계 수치로 어림잡아 볼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중 개인·문화·여가서비스로 해외에 지불한 돈은 1억380만 달러(약 1224억원)로 역대 최고였다. 영화 배급사에서 올겨울에 개봉할 어린이 영화 수입에 큰돈을 들인 영향이다. 그만큼 캐릭터 흥행이 캐릭터를 내세운 금융상품 매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KB경영연구소는 “특정 캐릭터를 떠올리면 저절로 금융회사도 연상시킬 수 있는 상호 연계성을 키워나가야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종이통장과 카드가 사라지는 마당에 캐릭터 비즈니스가 얼마나 갈지 의문”이라고 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