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교·안보를 정파적으로 다루면 국익 해쳐

입력 2019-11-29 04:03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7월 방한한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총선 전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자제를 요청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한 비판이 있자 총선 직전에 정상회담이 열리면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고, 회담 취지도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입장문과 긴급 의총 발언을 통해 “문재인 정권은 북한 이슈를 선거용으로 써먹을 생각 밖에 없으니 엉뚱한 시점에 정상회담을 열지 말라고 얘기한 것”이라며 “총선 전에 실질적으로 흔들기 위한 가짜 평화쇼 하지 말라는 것을 당연히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비핵화를 위한 회담은 지지하지만 총선용 회담은 안 된다고도 했다.

이에 청와대는 “역사의 죄인이 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말을 거둬들이라”고 했고, 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은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국가적 망신” “개최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등의 격한 표현으로 비난했다.

국내 정치나 선거를 위해 안보·외교 현안을 이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정파적으로, 단기적으로 이익을 가져올 수는 있으나 국가적으로, 장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의 말대로 “회담은 회담이고, 총선은 총선”이다. 정권이 총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북한을 이용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꼼수 정치는 우리 내부를 후벼 파고, 북한이 우리를 얕잡아 보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외교·안보 현안의 흐름과 결과가 설사 어느 정파에 유리하게 흘러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 이익과 관련된 것이라면 정치적 공방은 자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늘 날 선 협상을 해야만 하는 외교·안보 협상에서 상대방은 우리를 얕잡아 볼 것이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내부의 틈새를 적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경솔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늘 북한에 저자세이고 남북 관계 한 방이면 총선에서 간단하게 이길 수 있다는 정파적 논리가 압도해 이런 발언까지 나오게 된 것은 아닌가. 국익에는 길게 봐서 여야도 없고, 진보 보수도 없다. 남북 관계를 정파적 목적에서 다루는 건 국익을 해치는 심각한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