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문수정] 나도 몰랐던 ‘웰컴 키즈 존’

입력 2019-11-29 04:03

어느 여름 날의 이야기다. 지독한 폭염에, 땀은 폭포수처럼 흐르고(그 가운데 몇몇 땀줄기는 분명 식은땀이었다), 내가 가진 얄팍한 지식과 얕은 지혜를 총동원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절절매고 있었다. 한낮 최고기온이 섭씨 35도쯤 됐던 그 날, 나는 10개월 된 아기를 보살피느라 혼이 쏙 빠져 있었다.

아이의 컨디션은 완벽했다. 그래야 했다. 먹을 만큼 먹었고, 잘 만큼 잤다. 보송한 새 기저귀를 하고 있었으며, 체온은 정상이었고, 문밖의 폭염과는 별개로 집 안의 온도와 습도는 쾌적했다. 도무지 불편할 게 없는 상황인데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체 얘는 왜 이러는 걸까.

뭘 해도 안 통했다. 자초지종을 생략하고 그저 울기만 하는 아이와 단둘이 있다 보면 시간의 상대성을 절감하게 된다. 10분 정도만 돼도 체감하기엔 10시간 이상이다. 인내심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자 남은 선택은 도피뿐이었다. 아기 울음이 메아리치는 공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서 폭염이 도사리고 있는 문밖으로 다급히 뛰쳐나갔다. 뜻밖에도 거기에 정답이 있었다.

온 몸으로 내뿜던 아이의 절규를 대번에 멈추게 한 것은 바깥 공기였다. 묵지근하고 축축하기까지 한 뜨거운 여름 기운이 콧속으로 들어가자 아이는 그제야 웃었다.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무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팔다리를 휘저으며 즐거워했다. 아이에게도 외출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그날 나는 처음 알게 됐다. 당시 난 운전을 못 했고 유모차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아이가 있으면 운신의 폭은 초라하리만치 좁아진다. 아이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평상시 체온이 37도인 아이를 배에 매달고 찾아간 곳은 택시로 20분 거리의 백화점이었다. 덥지 않고, 평지고, 엘리베이터가 잘 갖춰져 있고, 유모차를 빌릴 수 있으며, 수유 공간이 있고, 음식을 먹으면서 쉴 수도 있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엄마와 아이 한 세트를 무턱대고 민폐로 여기지 않는 곳. 그 일대에 그런 곳은 백화점뿐이었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이 왜 백화점이나 쇼핑몰이나 마트에 자주 가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 되던 때가 있었다. 무자녀 시절의 무지했던 나는 아이 동반 방문이 ‘부모의 욕구’인 줄 알았다. 그저 ‘소비의 영역’일 뿐인 곳에 왜 자꾸 아이를 데리고 온단 말인가. 아이와 함께 갈 만한 곳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훗날, 당시의 내 모습을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일단, 없다. 그렇게도 없다. 놀이터, 공원, 키즈카페 정도가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곳이지만 놀이터와 공원은 비 오고 눈 오고 바람 불고 춥고 덥고 미세먼지가 자욱하면 못 간다. 꼽아보면 갈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키즈카페는 자주 이용하기에 비용 부담이 크다. 노키즈존을 거르고, 눈치 보이는 곳을 빼고, 비용 측면도 감안하면 결국 남는 건 백화점, 쇼핑몰, 마트다.

최근 몇 년 새 이런 경향은 더욱 확고해졌다. 백화점, 쇼핑몰, 마트는 점점 ‘웰컴 키즈 존’으로 정체성을 굳혀 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과 경쟁이 치열해진 덕이다.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오게끔 만들고, 방문한 뒤에는 오래 머무르도록 체험형 공간을 점차 늘리면서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진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아이 동반 외출에는 아이의 욕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오늘은 콧바람을 쐬고야 말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토대로 발산하는 에너지가, 그 몸부림이 외출의 최종 동력이 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는 ‘웰컴 키즈 존’은 육아 중인 이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곳이다. 모두가 조금씩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덕에 누군가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곳, 거기가 바로 ‘웰컴 키즈 존’이다. 누구든 아이들로 복작이는 곳이 싫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일 테다. 나도 백화점과 쇼핑몰과 마트를 고맙게 여기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