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배승민] 톡, 톡, 불안

입력 2019-11-29 04:06

“어떡해요, 선생님!”

직장인 A씨는 가벼운 우울증에서 회복 중이었다. 꼼꼼하고 신중한 성격의 그가 감정에 북받친 상태로 들어오니, 순간 나도 덩달아 긴장됐다. 사실 그날 A씨가 처음이 아니었다. 최근 유명인의 자살 소식으로 많은 환자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그런데 A씨는 그 뉴스 자체보다도 지인들의 무심한 이야기에 더 괴로워하고 있었다. 자신의 우울증을 알 리 없는 지인들이니 나쁜 의도가 아니란 것은 알지만, 일상 중에 불쑥불쑥 휴대폰에 뜨는 메시지들이 주는 고통에서는 빠져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의도적으로 피하던 뉴스들이 주르륵 뜨고, 아무개 탓이다, 마약이나 우울증 아니냐? 같은 말들이 톡, 톡 올라오면 두근두근 불안이 함께 올라왔다. 나도 우울증이 있는데, 결국 내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저 사람이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굳이 꺼낸 걸로 보아 내 병을 이미 알고 떠보려는 건 아닐까? 저렇게 돈 많고 유명한 사람도 병을 못 이겼는데, 좋아지고 있다고 믿었지만 치료가 부질없는 건 아닐까? 등등.

이러한 일은 비단 A씨만의 경험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범죄 피해자들 역시 부정적인 뉴스, 자신이 겪은 사건과 유사한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를 애써 피하는 경우가 많다. 뉴스는 그나마 TV 같은 동영상 매체보다 활자를 선택해서 보는 등 노력하면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데, 과거에 겪었던 일을 잘 모르는 주변 지인들이 무심코 보내는 메시지와 온라인 포스팅은 가드를 내린 상태에서 얻어맞는 훅과 같다.

인간의 삶에서 우울증과 트라우마는 흔히 발생한다. 연예인이나 공인 이야기는 친구끼리의 사담거리라고 생각되더라도, 내가 다 알 수는 없는 상대방의 일상에 갑자기 한여름 소나기같이 내리꽂히는 메시지가 열심히 버티고 있던 개구리에게는 치명적인 한 방의 돌이 될 수 있다. 아무래도 불안하다며 추가 약을 처방받아 가는 A씨의 한 주가 부디 무심한 연락들로부터 무사하기를.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연말, 수많은 아픔에서 우리 사회가 회복될 날이 오기를 모두가 함께 바라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톡과 함께.

배승민 의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