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하고 친중파가 궤멸한 뒤 홍콩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중국 외교부에 초치된 테리 브랜스테드 주중 미국대사는 오히려 “홍콩 사태를 매우 우려한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범민주 진영의 승리에 대해 “홍콩 시민들에게 축하를 보낸다”며 중국을 자극했다. 중국은 서방을 향해 “내정간섭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미국 내 여성의 성차별 등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보고서도 냈다.
2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브랜스테드 대사는 지난 25일 정쩌광 외교부 부부장에게 초치된 자리에서 “홍콩 사태를 심각하게 우려하며 지켜보고 있다”면서 “미국은 모든 형태의 폭력과 협박을 비난한다”고 밝혔다. 브랜스테드 대사는 범민주 진영의 선거 승리와 기록적인 투표율을 거론하며 “다양한 정치 견해가 선거를 통해 반영되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미국은 믿는다”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가 미 의회의 홍콩 인권법 통과에 항의하기 위해 브랜스테드 대사를 초치했는데 그는 오히려 홍콩 시민의 목소리를 존중하라며 면박을 준 셈이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정 부부장이 브랜스테드 대사를 초치해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고, 외국 정부와 세력의 간섭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고 전하면서도 브랜스테드 대사의 발언은 소개하지 않았다.
폼페이오(사진) 국무장관은 26일(현지시간) 홍콩 선거 결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홍콩 시민들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계속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및 민주주의 가치, 홍콩의 근본적 자유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중국 공산당이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있다는 문건이 폭로된 것과 관련헤서도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6일 신장 위구르자치구에 2017년 들어선 ‘직업훈련소’가 소수민족 탄압을 위해 만들어진 강제 구금시설이라는 증거가 담긴 중국 정부 내부 문건을 보도했고 이에 대해 영국과 독일 외교부, 일본 외무성 등이 위구르족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성명을 낸 바 있다.
중국은 미국 등 서방에 화살을 돌리며 연일 비난을 퍼붓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종성 논평에서 “미국 정치인들은 홍콩과 중국 내정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범민주 진영 구의원들이 당선 후 홍콩이공대를 찾아간 데 대해 “민생을 챙겨야 할 이들이 입법회 의원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했다.
중국은 미국 내 여성의 성차별 등 인권문제도 거론하고 나섰다. 중국인권연구회는 “미국 내 성차별로 여성의 인권 실현이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다”는 내용의 ‘미국 인권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회는 보고서에서 “미국 여성은 경제 분야에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취업과 임금 등에서 심각한 차별이 존재한다”며 “직장과 대학 내에서 성희롱 피해도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미국 여성 3명 중 1명이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고, 여군들은 군복무 중 성희롱과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연구회 관계자는 “미국은 ‘인권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미국인들은 인종·성 차별 등 모든 종류의 인권침해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