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원유? 빅브러더 출현?… ‘데이터 3법’ 존폐 기로

입력 2019-11-28 04:02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原油)인가, 데이터를 지배하는 빅브러더의 출현인가. 국내 데이터산업의 명운을 가를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정보통신망·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존폐 기로에 섰다. 각 법안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개망신법(法)’으로도 불리는 데이터 3법에서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이라도 넘은 건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하나다. 연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실상 자동 폐기가 유력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7일 전체회의를 열고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개인정보에 대한 관리·감독 역할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일원화하고, 개인정보를 가명(假名)으로 처리한 데이터를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이르면 오는 29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시민단체들은 개인정보 오남용 우려를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 열고 “국민의 개인정보를 기업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려는 법안”이라며 “단지 경제적·산업적 이유로 누군가의 개인정보가 생산원료나 공유자산인 것처럼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관건은 사회적 합의다. 개인정보를 기업이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데 동의를 얻어야 한다. 현재의 규제 일변도 체계로는 각국에서 일고 있는 ‘혁신 열풍’에 뒤처질 수 있다. 동시에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 상실, 보안사고 등을 우려하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설문조사해 지난 13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질병·의료 등 민감한 정보를 가명으로 처리해도 개인동의 없이 수집·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응답자는 70.5%나 됐다.

금융 당국과 금융·산업계는 입을 모아 ‘규제 개혁’ 필요성을 외친다. 기업들은 이미 데이터 3법 통과에 대비해 새로운 사업 계획을 준비 중이다. 금융플랫폼 업체 NHN페이코는 지난 26일 국내 최초로 금융 분야의 마이데이터(MyData) 사업 진출을 발표했다. 은행·보험 등 금융회사에 퍼져 있는 개인정보를 한곳에 모아 관리하고, 이를 통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금융위원회도 부위원장 직속으로 금융 분야 공공데이터를 통합·관리하는 금융공공데이터담당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데이터 3법의 입법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법안 발의 이후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은 건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뿐이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법안소위 논의조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지난 25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원포인트’ 법안심사소위를 열었지만,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 반대로 통과하지 못했다. 지 의원은 “금융위가 관계부처 협의를 뒤집고 사실상 실명(實名) 정보를 제공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제출했다”며 “국가가 기업 돈벌이를 위해 개인정보를 빼내는 법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데이터 3법은 오는 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이마저도 무산된다면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27일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에서 열린 ‘데이터 그랜드 콘퍼런스’에 참석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내 데이터 3법이 통과되도록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