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장희] 다주택자 퇴로 열어줘야

입력 2019-11-28 04:01

매매 계약을 파기하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위약금을 물더라도 더 가지고 있다 내놓으면 훨씬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말 그대로 ‘매도자 우위’ 시장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19일 열린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의도와는 반대로 일부 시장 참여자에게 “집값은 더 오른다”는 확신만 더 굳게 만들어준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방법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면 더욱 강력한 여러 방안을 강구해서라도 반드시 잡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 수 있게 양도소득세를 낮추고 대신 보유세를 높여 무주택자들이 집 한 채를 가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언엔 “참고하겠다”고만 짧게 답했다.

이를 본 부동산 ‘고수’들의 평가는 박했다. 유튜브 등에서 “부동산 관련 규제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 “다주택자들이 버티는 장세가 계속될 것” “매물이 잠길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당분간 강세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수요가 많고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은 오른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서울·수도권 신규 공급은 부동산상한제 등으로 막혀 있고, 다주택자들의 보유 물량이 시장에 풀릴 여지도 없으니 아파트값이 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 다주택자들은 보유 물량을 시장에 내놓고 있지 않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2018 주택소유통계 결과’를 보면 지난해 주택 2채 이상을 소유한 다주택자는 219만2000명으로 나타났다. 2017년보다 7만3000명이 증가한 수치다. 증가 폭이 줄었다지만 높아진 규제수위에도 버티고 있는 다주택자들의 분위기를 통계는 잘 보여준다. 주택 2채 보유자는 166만명에서 172만1000명으로, 3채는 27만2000명에서 28만명으로, 5채 이상은 11만5000명에서 11만7000명으로 늘었다.

문제는 실수요자들의 마음이 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변 시세보다 싸게 공급될 신규 분양을 기다리던 이들조차 “막차라도 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초조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23주 연속해 상승한 서울 아파트값을 보면서 ‘꿩 대신 닭’이라고 강남 근처 과천이라도 일단 사놓고 보자는 행렬에 30대도 동참하고 있다. 저금리로 넘친 유동성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최소한 총선 때까지는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실수요자들의 조바심을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주택시장에선 고가·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를 강화하고, 한시적으로라도 거래세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주택자들이 차익실현은 하게 두되, 그 돈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오기 어렵게 하면 가격도 안정되고 공급도 느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보유세 인상이나 거래세 인하는 정부가 선뜻 꺼내기 힘든 카드임은 분명하다. 투기 세력에게 퇴로를 열어주고, 정책 일관성을 훼손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뒤따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보유세 인상에 대한 조세저항, 거래세 인하에 따른 지방재정 악화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8·2, 9·13 대책에 이은 강력한 3차 부동산 종합대책이 나온다 한들 불붙은 수요를 단기간에 억누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이 카드를 이제 진지하게 검토할 시기가 온 것 같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실수요자들도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부동산은 주식처럼 바로바로 사고팔 수 있는 자산이 아니다. 비트코인처럼 급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외부 충격이나 금리인상 등 악재는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또 서울 집값이 벌써 6년째 상승세라는 점, 노무현정부 당시 급등했던 집값은 글로벌금융위기 때인 2008년 급락했고 2013년까지 침체기가 이어졌던 과거도 되돌아봐야 한다. “지금 아파트를 사면 얼마 동안은 기분이 좋겠지만 그 이후 견딜 수 있느냐는 여러분의 몫”이라는 어느 전문가 답변의 행간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한장희 산업부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