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선거 범민주 압승… 직선제 요구 거세질듯

입력 2019-11-26 04:00

홍콩 범민주 진영이 24일 치러진 구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친중국 진영은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친중국 진영은 시위대의 폭력성에 염증을 느끼는 ‘침묵하는 다수’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민심은 홍콩의 중국화와 경찰의 폭력 진압에 더욱 분노하고 있었다. 범민주 진영의 선거 압승으로 향후 ‘행정장관 직선제’ 등 시위대의 정치적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2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집계에 따르면 범민주 진영은 이번 선거에서 전체 452석 가운데 347석(76.8%)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친중파 진영은 60석(13.2%)에 그치며 참패했다. 중도파는 45석(10%)을 얻었다. 중도파는 사실상 민주 진영에 동조하는 성향이라고 SCMP는 전했다. 빈과일보도 범민주파 389석, 친중 60석, 기타 3석으로 분류했다. 명보는 범민주파 326석, 친중파 39석, 무소속 69석, 기타 18석으로 분류해 다소 차이를 보였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선거 결과에 대해 성명을 내고 “사상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것은 시민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견해를 표출하고 싶었다는 것을 뜻한다”며 “홍콩 정부는 선거 결과를 존중해 앞으로 시민들의 의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 진영은 구의원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대부분의 구의회를 장악하게 됐다. 홍콩 내 최대 친중파 세력인 민주건항협진연맹은 출마 후보 대부분이 선거에서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반면 범민주 진영인 공민당은 전체 후보 36명 가운데 32명이 승리했고, 노동당은 7명 후보자 전원이 당선됐다.

현재 홍콩의 구의원은 친중파 진영이 327석, 범민주 진영이 118석으로 18개 구 의회 모두를 친중파가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범민주 진영이 역으로 싹쓸이하는 ‘선거 혁명’이 일어났다. 홍콩에 대한 중국식 통치방식에 분노한 젊은 층이 투표에 적극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홍콩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는 총 294만여명의 유권자가 투표해 71.2%의 투표율을 보이며 투표인 수와 투표율에서 홍콩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승리함에 따라 차기 행정장관 선거 등에서 상당한 소용돌이가 예상된다. 범민주 진영은 이번 선거 승리로 행정장관 선거인단 1200명 가운데 구의원 몫인 117명을 확보함으로써 향후 홍콩 정치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2016년 12월 행정장관 선거 당시에는 선거인단 중 친중파가 726명, 범민주파가 325명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 결과로 선거인단 중 117석이 민주 진영으로 넘어가게 됐다. 친중파의 과반 확보가 위태로워지면서 차기 행정장관 선거 때 친중파의 당선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미 샴 민간인권전선 대표 등 그동안 ‘행정장관 직선제’ 등 5대 요구사항 수용을 촉구하며 시위를 주도하던 인사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정치개혁 요구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서 참패한 친중 진영에서는 람 장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선거 패배로 이어졌다며 람 장관 경질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중국 중앙정부는 람 장관이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를 이끌고 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