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30시간’ 싸늘한 민심에… 빈손으로 물러난 철도노조

입력 2019-11-26 04:02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한 25일 서울역 대합실 전광판에 파업 철회 소식이 붉은 글씨로 안내되고 있다. 파업이 철회된 이날까지도 시민들의 불편은 이어졌다. 권현구 기자

‘주39시간’ 근로시간을 ‘주30시간’으로 단축하려던 전국철도노조의 총파업이 5일 만에 철회됐다. 노사 합의에 따른 것이지만 노조가 얻어낸 건 1.8% 임금 인상에 불과해 “처음부터 국민을 볼모로 잡은 불필요한 파업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철도노조와 한국철도(코레일)는 이틀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25일 오전 6시쯤 협상을 타결했다. 합의 내용은 2019년도 임금을 전년 대비 1.8% 인상하고, 정률수당은 내년 1월부터 지급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쟁점인 인력 충원 문제는 철도노사가 국토부와 함께 협의하기로 했다. 코레일관광개발 임금·승진체계 우선 논의, 자회사 직원의 임금개선 건의, KTX·SRT 고속철도 통합 문제도 노사가 공동으로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사실상 노사가 합의한 것은 임금 인상에만 국한됐던 셈이다.

합의 내용이 나오자 철도노조 안팎에선 ‘굳이 파업이 필요했느냐’는 반응 일색이다. 노사협약을 통해 매년 1~2%대 임금 인상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에도 노사는 2018년 임금을 전년 총액 대비 2.6% 인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특히 임금 인상률 1.8%는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공기업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수준에 불과하다. 노조 내부에서조차 “파업 말고도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란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철도노조 조합원은 노조 홈페이지의 ‘2019년 임단협 잠정합의안 도출, 25일 09시 파업 중단’이라는 게시글에 “기본 정부방침이 1.8%인데 잘했다고 적어놓은 거냐”는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조합은 “이 정도는 파업 안하고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합의안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노조 측은 핵심 쟁점이던 인력 충원, 이를 위한 4조 2교대 근무제 도입에는 노사 양쪽이 큰 틀에서 공감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당초의 원칙에서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 3조 2교대 근무를 해도 주39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데, 4조 2교대 근무제가 도입되면 근로시간이 30시간에 불과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4000명을 충원하려면 매년 4000억원의 혈세가 투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파업 첫날 김경욱 국토부 제2차관의 언급에도 잘 드러났다. 김 제2차관은 “국민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면 검토 자체가 불가능하다. 코레일의 작년 영업적자가 900억원인데, (노조가 요구하는 4000명이 아니라 사측이 원하는) 1865명만 증원해도 매년 3000억원 적자가 난다”고 했었다.

이와 관련, 코레일 관계자는 “4조 2교대 관련 취업규칙을 정하는 것이 먼저다. 그게 정해져야 인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의 다른 요구사항이었던 한국철도와 SR 통합 문제는 국토부가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 평가’를 재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철도노조는 당초 SR이 강남권 노선 등 이른바 ‘흑자노선’을 가져가 코레일 경영에 타격을 입혔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통합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국토부는 연구용역 종료 후 이 문제를 논의하자는 입장이라 통합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조상수 철도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장은 “불가피한 파업이었지만 불편함을 참아주신 시민들께 머리 숙여 인사드린다”며 “안전하고 공공성이 강화된 한국철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